일일 지랄 :: <코스모스> 끝까지 읽기 2018/07/16 23:15 by yorq


1.
지난 3년간 책장에서 관상용으로만 활약하던 <코스모스>를 (갈다 프로그램을 통해 겨우), 다 읽었다.

책에 담긴 내용을 직접 읽어 흡수하는 것과 비교할 때, 책을 인테리어로 소비하는 시간은 비극임이 틀림없다. 책을 다 읽으니 그런 생각이 명징하게 들어와 박힌다.

3년간의 비극이 끝맺으니 참으로 좋다.


2.
하도 너도나도 칼 세이건을 칭송하기에, 나같이 삐딱한 애는 그런 행태에 반감을 품고, 눈에 불을 켜고 그와 그의 책에 대해 어떻게든 까려고 맘먹었다. 그런데 그건 칼 세이건과 코스모스를 인테리어로만 접하고 있을 때 가능한 꿍꿍이였다. 보기 좋게 실패했다. 칼 세이건과 코스모스는 매우 근사하다.


3.
'깊이 있는 교양서란 있을 수 없다'는 이명현 박사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전공자는 아니지만, 교양인이 되고 싶은 일반 독자는 좀 더 난이도 있는 번역서를 원한다. 하지만 출판사에서 그런 책을 낼 순 없다. 난이도 있는 교양서를 읽을 사람이 아주 드물기 때문이다. 책을 살만한 사람이 있어야 출판사는 마땅히 그 책을 번역해 출간한다. 그런데 그런 소비층이 소비층으로 형성돼있지 않은 이유는, 그 정도로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굳이 번역서가 필요하지 않아서다. 이런 현실의 경계를 처음 알게 되었다.

Reasonable apollon's mind :: 악의에 찬 외계 문명 2018/07/16 20:07 by yorq

공상 과학 소설과 UFO 문학에서 즐겨 다루는 소재가 문명과 문명 사이에서 벌어지는 전쟁이다. 외계 문명이 소유한 우주선이나 광선총이 우리 지구 문명의 것과 다르기는 하지만, 실제 전투에서는 쌍방이 대등한 수준의 전력을 갖고 막상막하의 대결을 펼친다. 그러나 실제로 은하의 어느 두 문명권이 대등한 수준일 리가 없다. 그 어떤 대결에서든 항상 한 문명이 다른 문명에 비해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할 것이다. 100만 년이라는 세월은 엄청 긴 시간이다. 우리보다 앞선 기술을 가진 문명권이 지구로 와서 무엇을 한다면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기만 할 것이다. 그들의 기술과 과학의 수준이 우리보다 월등하게 앞설 것임에 틀림이 없기 때문이다. 지구 문명이 악의에 찬 외계 문명과 만났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걱정할 필요조차 없다. 그들이 살아남았다는 사실 자체가 동족이나 다른 문명권과 잘 어울려 살 줄 아는 방법을 이미 터득했음을 입증하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다스리고 남과 어울려 살 줄 모른다면 그렇게 오랜 세월을 견뎌 낼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외계 문명과의 만남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우리 자신의 후진성에서 유래한 것이다. 우리의 공포감은 우리 자신의 죄의식을 반영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과거에 저지른 잘못을 잘 알고 있다. 인류의 역사에서 한 문명이 그보다 약간 선진적인 또는 약간 후진적인 문명에게 철저하게 파괴당하는 야만적 상황을 우리는 여러 차례 목격했다. 콜럼버스와 아라와크 족의 만남이 그랬고 코르테스와 아스텍이 그랬다. 라 페루스와의 만남 이후 틀링지트 족이 겪어야 했던 최후 운명이 또한 그랬다. 우리는 저들도 우리와 같을 것이라도 믿기 때문에 외계 문명과의 조우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외계인의 성간 함대가 우리 하늘에 나타났을 때 우리가 그들과 잘 화해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_ 칼 세이건, <코스모스>(양장), 506쪽.

***

대학 시절, 동기 우승이는 우주 전쟁(지구인 vs 외계인)을 소재로 SF 스토리를 쓰고 있었다. 우승이는 만약 외계인이 있고, 우리와 만나게 되면 반드시 전쟁이 일어날 거라고 했다. 나는 사이좋게 지내도 되는데 왜 꼭 전쟁이 일어나야 하냐고 물었다. 우승이는 기다렸다는 듯, 미지의 타자를 만나면 일단 적대하는 게 인간의 본성인 것 같다고 했다. 역사상 낯선 타자가 만나 평화로웠던 적이 거의 없으니, 외계인이야 어떨지 몰라도 적어도 인간은 기어이 외계인을 공격할 거라고 했다. 그 대답이 바로 우승이가 쓰고 있는 스토리의 테제였다.

평소 공포란 무지에서 비롯되며, 그 공포는 빈번하게 폭력을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하던 나에게 우승이의 말은 그럴듯하게 들렸다. 무리 중 조금이라도 이상(다른 모양)한 누군가가 있으면 어떻게든 각종 차별과 괴롭힘으로 대접하는 게 우리의 자화상이니까.

그 일을 계기로 나는 외계인이 있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외계인이 있다 해도 우리랑 만나선 안 되겠다 싶었다. 만나면 싸울 테고, 싸우면 많이 죽을 테니까. 근데 실은 말이 그렇지, 외계인이든 전쟁이든 1g도 걱정되지 않았다. 외계인이란 건 그야말로 사람들의 자유로운(무책임한) 공상(망상)이 낳은 농담 정도로 여겼으니까.

그런데 과학자들이 어째서 외계 지적 생명체를 논하는지, 그들의 일리를 1g 접하고 나니, 그 일리에 동조하게 됐다.

뭇 과학자들이 외계 지적 생명체에 관해 긍정하는 대강의 근거는 이렇다.

- 온 우주는 같은 물질과 같은 물리법칙으로 작동한다.
- 지구가 지닌 조건에서 인류라는 지적 생명체가 탄생해 살아간다면, 지구와 비슷한 조건의 행성에서도 지적 생명체가 기꺼이 탄생해 살아갈 수 있다.
- 광막하기 그지없는 우주는 그런 후보군을 무수히 품고 있다.
- '외계 생명체가 존재한다'의 증거 부재가 '외계 생명체가 부재한다'의 증거가 될 수 없다. 증거의 부재는 부재의 증거가 아니다.
= 따라서 지구 외, 인류 외에도 지적 생명체가 있을 것이다. 우주의 광막함을 고려하면 외계 지적 생명체가 없다는 판단이 오히려 비합리적이다.

그리고 이제 위에 인용한 칼 세이건의 근사한 논증을 본다.

- 상대방을 적대하는 태도를 지닌 존재는 긴 시간 속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자멸한다.
- 저들은 긴 시간 속에서 자멸하지 않고 살아남았다.
= 따라서 저들은 상대방을 적대하는 태도를 지니지 않았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직관적인 설명이다. 압도적인 위력을 지닌 상대방이 평화를 추구하니 우리는 저들과 싸우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러니까 칼 세이건의 추측 안에는 인류가 나아가야 할 성숙의 방향이 묻어 있다. 인류가 긴 시간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지금처럼 지들끼리 투닥투닥해선 안 된다. 지금처럼 투닥투타하는 건 우주 내 지적 생명체의 자격을 거부하는 일이다.

이런 칼 세이건의 추측을 들으면 우승이가 뭐라 할지 궁금하다.


일일 지랄 :: 애들 수준이 갈수록 2018/07/14 21:21 by yorq

선생은 해가 갈수록 학생들의 실력 수준이 떨어진다고 걱정한다. 예전 애들이 뛰어나고, 요즘 애들이 뒤떨어진다고 혀를 찬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선생 자신이 게을러졌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는다.

선생은 이제껏 쌓은 경험만큼 학생을 효과적이며 요령 있게 대한다고 착각한다.

분명한 사실 하나는 학생에게 쏟는 선생의 에너지가 줄었다는 것뿐이다.

선생의 게으름이 커질수록 선생의 눈에 비치는 요새 애들 수준이 눈에 띄게 떨어지는 건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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