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otionable dionysos's.. 신경숙 - 엄마를 부탁해 2009/01/17 00:19 by yorq






    "신년을 맞아"라는 의미를 부여하며, 은서 누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어쩌다보니까 나란히 스물 다섯이, 스물 여섯이 돼버렸다니 징그러운 일이 아닐 수 없음을 토로하다가, 그렇게 한해 한해를 흘려보내며 마주하게 되는 '더 나중의 내'가 점점 나다워지는 것인지, 아니면 지난 시간의 '더 이전의 내'가 정말 나 다운것인지에 대해서 헷갈려 했다. 제때의 흐름을 타고 몇 년전과는 달리 내가 변해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친구들은 지난날의 나를 더 그리워하는 것 같다며. 과연 이 시간은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 것일까 하는 도통 알 수 없음을 이야기 했다. 어떤 은사님은 진정한 내 모습이 자리할 '내 자리'는 과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있는 것이라고, 가히 스승스러운 말씀을 해주셨노라고 이야기 해가며. 끝내 우리는 '정화의 배'를 이야기하며 이야기를 정리를 해냈다. 정화의 배가 대항해 시대를 구가하며 세계를 누빌때, 갖은 풍파를 맞아 파손된 부분을 수리하고 수정을 해갔다. 그러한 과정을 겪으며 일주를 끝낸 정화의 배는 최초와 비교해 전혀 다른 성분을 가진 배가 되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정화의 배를 정화의 배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어디 안가" 하면서 우리는 웃었다.

 ( 이 책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더라. '지나간 시간에 함께한 일들은 어찌 되는 건지 당신은 알고 있소이? 당신한테 묻고 싶은 말을 내 딸애한테 물었더니 내 딸은 엄마가 그런 말을 하니 너무 이상해, 하며서도, 사라지는 게 아니라 스며드는 거 아닐까, 엄마! 합디다. 무슨 말이 그리 어려운지. 당신은 알아 듣겠소? 이젠 지나가버렸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사실은 모두 여기에 스며들어 있다는데, 느끼지 못할 뿐 옛날 일은 지금 일과 지금일은 앞의 일과 또 거꾸로 앞의 일은 옛날 일과 다 섞여 있다는데...' p.235 )

    꿈을 품은 마음과 그 불안에 대해서는 라디오에서 들은 어떤 지질학자의 이야기를 했다. 땅을 잡고 시름해봐야 거기서 돈이 솟아 나오느냐, 그거해서 뭐할래, 라는 주위의 질타 섞인 지적에도 지질학자는 지리 연구를 무던히 계속할 뿐이었다. 그에게 있어 지리 연구보다 더 큰 즐거움은 없을 뿐더러, 그 뿐이면 되었으니까. 그러던 지질학자가 어느 날 갑부가 되었다. 다름없는 연구를 계속하던 중에 지질학자는 기름이 나는 땅을 발견한 것이다. 
    즉물적인 자세로 방향 설정을 한다 하더라도, 조바심에 조급해 할지라도 달리 답이 있지는 않다. 꿈을 품은 마음 때문에, 그 누구보다, 그 어느때보다 행복한 때를 살고 있다, 라고 이야기하는 그녀가 보기 좋았다. 이렇게 연약한 주술을 걸며 우리는 흡족하게 신년을 다졌다.
 
    아빠 얘기로 엄마 얘기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또 그렇게 한해 한해를 보낼수록 극명한 강박이 되어가는 당신들. 나의 부모님.  
내가 자란만큼 그 대가로 고스란히 늙어 병들어 있어야 하는 당신들.
최선을 주지만 늘 최고를 주지 못해 자책하는 당신들.
그토록 관대한 당신들이지만 나 때문에 패배감을 느껴야만 하는 당신들. 
더욱 처참하게 옥죄어 오는 '내 몫의 삶'이라는 경계. 

    누나는 프로이트의 도움으로 나의 부모를 객관화하고 내면의 자신과 화해시킨 시간을 이야기했다.
성과지향적인 부모임을 이해하고 인정한 후에라야, 그것에서 벗어나 비로소 자신의 꿈을 품을 수 있게 되었노라 고백했다. 개인적 욕망을 자식에게 투영시켜 보상하고자 하는 부모, 자식으로서 그 요구에 어떤 성과라도 내비춰야했으므로 도처에 널린 분쟁에 아파해야했고, 그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 자칫 일생을 소진해야할지도 몰랐다. 어떤 눈부신 성과를 내보이던 결코 그들을 만족시킬 수 없음을 깨닫게 되자 그제사 자기의 삶이 보였다. 자식을 위한 일이라고 하는 부모의 요구는 결국엔 자식을 통해 성취하고자 하는 부모의 개인적 욕망과 다름없다. 또 개인의 욕망이란 채워질 수도 없지 않은가. 더불어 재미있는건 같은 부모를 둔 형제지만, 자기 동생에게 있어서의 부모님은 자기의 그것과 또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면 나의 부모는 어떠한가. 얼마 전에 쓰게되었던 자기소개서를 통해, 또 이렇게 대화하며 내뱉어가는 중에, 무심결에 엎질러지는 글과 말을 통해 내 안에 잠재되어 있던 부모라는 형태가 보다 선명한 형상을 띠기 시작했다. 나의 부모는 삶의 현장 곳곳에서 주어진 환경에 순종적이라기보다는 투쟁적이었다. 이런 이유로 나는 나의 부모에게 의당 지녀야할 혈육의 사랑 이상으로, 개인대 개인으로서 경탄할 만한 존경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런 일련의 대화를 하고나서, 누나는 서점에 가서 이 책을 내게 선물했다. 자신은 지하철에서 보고 있는데 자꾸 눈물이 나서 민망했더란다. (자. 이제 좀 책 이야기) 물론 그 이야기에 나는 절대 울지 않을것이라 단언했다. 이제는 엄마 얘기에 그만 좀 울어도 될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3장의 아버지와 큰딸의 통화 장면에서 '아버지가 붙잡고 있는 수화기 줄을 타고 큰딸의 눈물이 흐르자 아버지의 얼굴은 눈물범벅이 되었고', 수화기 줄을 타고 흐른 큰딸의 그 눈물이 내게로까지 흘러, 나 역시도 사정없이 무너졌다. (새가 된 엄마가 작은 딸을 찾아 바라보며 회고하는 대목에서도.)

    소설의 화자는 4명이다. 큰딸, 큰아들, 아버지 (혹은 남편), 그리고 엄마 자신.
별안간에 실종된 엄마, 엄마의 부재라는 장치가 가동하기 시작하면서, 화자들은 각기 입장에서 각자에게 자리잡고 있는 엄마를 특정하게 조망하고, 한 편의 소설 속에 엄마라는 전체를 엮어내고 있다. 
    집을 떠나 사회의 어른이 된 큰딸. 큰딸은 시골 고향집에 엄마를 찾았는데 자기가 딸이 아니라 손님이 된 듯한 기분을 느낀다. 딸이 올줄 알았으면 집안 좀 깨끗하게 해놓았을건데하며 부끄러운듯 집안을 정돈하는 엄마의 모습 때문이다. '가족은 다 먹은 밥상을 치우지 않고 앞에 둔 채로도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관계다'라고 큰딸은 술회한다. 예전에는 내가 어떻게 하면 엄마가 화를 내고, 또 내가 어떻게 하면 그 화가 풀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만큼 엄마의 모든것을 알고 있던때가 있었는데, 더는 엄마 가 누군인지 모르겠어, 라고 고백하는 큰딸. 큰딸은 잃어버린 엄마를 잊어버리고 있음을 깨닫는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 중년이 된 큰아들. 일상의 녹을 뒤집어쓴 지금에 와서 이루지 못한 청년시절의 꿈을 두고 안타까워한다. 엄마를 잃어버리고서야 자기의 꿈이 엄마의 꿈이었음을 상기해내고 이제는 빛이 바래버린 다짐들 앞에서, 엄마를 향한 죄스러움에 그는 눈물 짓는다.    
    가부장적인 남편의 젼형을 살아오신 아버지. '오십년 동안 줄곧 대체로 잊고 지낸 아내가 당신의 마음에서 생생하게 떠오른다. 아내가 사라진 뒤에야 손으로 만질 수 있을 것처럼 육감적으로 다가오는 아내', 겉보기에 그토록 완고한 아버지가 아내가 떠난 뒤에 화자가 되어 그 속내를 절절하게 회고하고 있다. 
    자식과 남편에겐 처음부터 엄마이고 아내인 사람이었지만, 그 이전에 사람이고 여인이었던 엄마. 그 엄마가 마지막 순간에 당신의 엄마에게 말한다.'엄마는 알고 있었을까. 나에게도 일평생 엄마가 필요했다는 것을'

    이 소설은 우리 자신의 이야기이다. 책 한 권에 녹아있는 엄마라는 전체, 구구절절히 들어와 박히는 그 문장들 속에는 다채로운 국면의 자식과 엄마가 어느 하나 빠짐없이 담겨져 있다. 막내 딸의 편지에는 자기를 버리고 자식에게 헌신한 부모의 모습에, 혹여 자신도 제 부모를 닮아 자식을 위해 자기가 사장돼버릴지 모른다는 불안이 드러난다. 또 이것에 대한 정수를 귀뜸한다. 엄마라고 그러고 싶었을까...
  '아이들 때문에 내 인생이 정체되고 있다는 생각할 때도 많아. 나는 셋째가 조금만 더 자라면 놀이방에 보내거나 사람을 구해 아이를 맡기고 내 일을 할 거야. 그럴거야. 내 인생도 있으니까. 이런 나를 깨달을 때마다 엄마는 어떻게 그리할 수 있었는지 엄마를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엄마가 우리만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것 엄마 상황에서 그렇다고 쳐. 그런데 우리까지도 어떻게 엄마를 처음부터 엄마인 사람으로 여기며 지냈을까. 내가 엄마로 살면서도 이렇게 내 꿈이 많은데 내가 나의 어린 시절을, 나의 소녀시절을, 나의 처녀시절을 하나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데 왜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인 것으로만 알고 있었을까. 나는 엄마처럼 못하는데 엄마라고 그렇게 살고 싶었을까? 엄마가 옆에 있을 때 왜 나는 이런 생각을 한번도 하지 않았을까.' p.261
 
    또한 큰아들은 이세상 모든 자식들이 가진 죄의식에 대한 가장 그럴싸한 면죄부를 제시한다.
'오빠는 엄마의 일생을 고통과 희생으로만 기억하는 건 우리 생각인지도 모른다고 했다. 엄마를 슬프게만 기억하는 건 우리 죄의식 때문일지 모른다고. 그것이 오히려 엄마의 일생을 보잘것없는 것으로 간주하는 일일 수도 있다고.' p.272

    이 책에 드러나는 엄마라는 이름에 대한 갖가지 술회.
'자식들이 성장하는 동안 점점 사라진 여인. 자식을 위해서는 그 무엇에 놀라지도 흔들리지도 않은 여인. 일생이 희생으로 점철되다 실종당한 여인, 창세기 이래 인류의 모든 슬픔을 연약한 두팔로 끌어안고 있는 여인, 우리가 기대며 동시에 밀어낸 엄마, 스스럼 없이 나를 혼냈지만 더이상 나를 혼내지 않는 엄마, 어머니 라는 말대신 엄마라는 말을 포기하지 않게했던 엄마, 내가 무언가에 좌절을 겪을 때마다 수화기 저편에 있는 엄마, 엄마라고 부를 때 엄마가 건강하다고, 엄마는 힘이 세다고, 엄마는 무엇이든 거칠 게 없다고 믿고싶은 엄마, 거의 잊고 지내면서 잊고 지내지 않을 때는 대부분 무엇을 청하거나 탓하거나 방치했던 엄마,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나무, 베어지거나 뽑히기 전에는 어딘가로 떠날 줄 모르는 나무같은 엄마.'
    
   작품 해설에서 이 소설의 사실감과 핍진감은 특정 문장이나 단락, 일물일어의 숨가쁜 대응에서가 아니라 전체의 흐름에서 오는 것이라고 멋드러지게 설명을 해주었는데, 그 말에 십분 공감을 하면서도 일부의 문장들을 조악하게 조합해 보았다.
서로 책 한권씩을 끼고 서점을 나서는데 "책 선물은 정말 좋은것 같아. 정말 좋은것 같아"라고 연신 말하며 기뻐하는 누나의 그 유난스러움이 뭘까 싶기도 했었는데, 풍요롭게 감복의 순간을 선사받은 이제라야 그 말의 진실을 알게된것 같다. 
작품을 두고서 글이건 썰이건 작품에 대한 탁월함과 개인적 감동에 대해 설명해내려 한다해도 그것이 그 작품보다 더 훌륭할 수 있을까. 어떤 형태로든 작품에 대한 부산물을 생산해낸다 할지라도 그 가치가 작품 자체에 비견할 수 있을까. 아무리 입이 근질근질하고 마음이 안절부절해도 그 마음은 책 한권을 건내줌으로 전달이 되리라. 족하리라. 책선물은 정말 좋은것 같다.

    이 글을 쓰고 있는데, 불현듯 얼마 전에 있었던 나의 추태가 떠오른다. 집들이가 있었고, 현장에 있었던 사람의 증언을 통해 알게된 사실이다. 난 기억이 없는데 내가 이만큼 취해가지곤 사람들에게 구태여 감을 깍아주겠다고 했다고 한다. 손에 감과 과도를 쥐려고 난리를 부렸단다. 그 일이 있고서 나는 내가 왜그랬을까 시간을 돌려 되짚어 봤다. 
    어린 시절 형과 나를 나란히 앞에 앉혀놓고 엄마가 사과를 깎아준다. 우선 '탁'하는 경쾌한 소리로 사과를 기절시키고 엄마는 사과를 갂아내린다. 벗겨진 사과 껍질이 끊기지 않고 흘러내린다. 형과 나는 끊기지 않고 벗겨지는 대로 점점 길어지는 껍질을 잡고 늘어뜨린다. 행여 껍질이 끊길때면 형과 나는 '아'하고 아쉬워한다. 사과를 깍는 엄마를 관찰하며 내 스스로 사과를 깎아 보는데 잘되지않아 엄마한테 어떡해야 사과를 잘 깎을 수 있는지 묻는다. 엄마는 "이렇게 칼을 쥐고서, 엄지는 깎을 데를 미리 짚고서 칼이 따라가면 잘 깎여"라고 말해준다. 엄마의 말대로 해보는데 그게 잘 되지않자 나는 과도를 쥐고있는 오른손 엄지대신, 왼손 엄지를 이용해서 사과를 깎아보는데 훨씬 수월했다. "엄마 이렇게 하니까 더 잘돼" "그래도 오른손 엄지를 써야 더 빠르고 잘돼지" "난 이게 더 편한대" "네가 아직 손이 작아서 그래" 그 얘기를 듣고 나는 안도했다. 아직 손이 작기 때문에 사과를 잘 못 깎아도 되겠구나. 한 손만을 이용해서 사과를 깎을 정도로 내 손이 더 큰 나중에되서 사과를 잘 깎으면 되겠구나라고. 
    그렇게 덮어두고서 시간이 더 지난 어느 날(중학생일때 이던가), 문득 내 손에 비해 너무 작아져 있는 엄마의 손을 발견하곤 혼자 멋쩍어 잠시 망연해져 있었다. 어느새 엄마의 손이 이렇게 작아졌을까. 나는 여전히 왼쪽 엄지를 써서 사과를 깎고 있는데. 그 이후로 나는 사과 깎는 일에 의욕적인 사람이 되었다. 그 사건이 나를 누구보다 과일을 잘 깎는 사람이 되야한다라는 은연중에 다짐을 하게 해주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기억도 못하는데 그렇게 추태를 부렸는가 보다. 또 기회가 닿는 족족 나는 내가 과일 잘 깎는다고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니 언젠가 내가 그리 우기면 얼통당토 하지 않아도 그러려니 해주쇼. 엄마에 대한 마음이 담겨있어서 그러니..


    세상의 모든 슬픔을 끌어안은 엄마, 당신의 슬픔은 누가 안아주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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