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otionable dionysos's heart :: 번역 2012/08/10 17:24 by yorq




  "단 한 작품이라도 어떤 작가의 작품이 우리의 마음에 울림을 주었다면, 그 작가를 잊을 수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작가가 저 먼 포르투갈 어디에선가 사망했다는 기사도 절대로 심상하게 넘길 수가 없는 겁니다. 어쩌면 먼 친척의 누군가가 죽었다는 것보다 내가 감명 깊게 읽었던 어떤 소설의 저자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더 크게 다가올지 모른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끼리의.... 뭐랄까요, 비밀스러운 연대랄까요? 이것은 사실은 가족주의, 민족주의라는 강력한 감정도 초월하게 됩니다. 국경을 초월해서 우리는 어떤 작가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요. 

  예를 들면 이런 경우입니다. 카프카의 작품을 뭐 어디 아르헨티나의 서점에서 발견해도 우리는 반가움을 느낍니다. 그것은 카프카를 알아서 반갑기도 하지만, 아르헨티나에도 카프카를 읽는 독자들이 이렇게 있구나 라는 걸 발견하기 때문에 기쁜 것이죠. 여기에도 나와 영혼이, 정신이 교통할 수 있는 누군가가 살고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 정신적인 기쁨과 위안을 주는 것인데요. 문학이 가진 이런 초국가적 성격, 탈국가적 성격들은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물론 번역을 거치고 이런 여러 가지 일들을 통해서 다른 나라로 전해지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꼭 번역을 통해서 전해진 어떤 작품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잘못되면 어느 민족주의와 지나친 순결주의에 빠지게 되는 것이죠. 사실은 우리가 읽는 너무나 많은 작품들은 거의가 번역이고요, 심지어 고전들도, 우리의 고전들도 우리는 번역을 통해서 읽고 있습니다. 그렇죠? 삼국사기라던가, 유사라던가,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같은 것도 우리는 번역을 통해서 읽는 것이지, 원문을 읽는 것은 결코 아니죠. 마찬가지로 다른 나라의 작품들, 많은 오역과 여러 가지 잘못된, 또는 부정확한, 또는 매끄럽지 않은 번역일지언정, 우리는 어떤 작품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일단 그 작품과 작가와 만나게 되면 더 이상 남이 아닌 거죠. 예. 남이 아닙니다. 비록 제가 포르투갈어로 된 주제 사마라구를 읽은 것은 아니지만, 주제 사마라구를 누구보다 더 가깝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죠." 

  _ 김영하 (주제 사마라구를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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