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minute comment :: 김영하 - 살인자의 기억법 (2013) 2013/07/24 00:57 by yorq

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나의 점수 : ★★★★

김영하의 새 소설을 읽었다. 이번에도 예외 없이 금세 읽혔다. 책을 전체의 판으로 보지 못하고, 문장 하나만 잡고 늘어지는 습관을 일찍이 잘못 들였다. 문장 하나 갖고 치사하게 구는 방법 외엔 책 보는 법을 모르는 게다. (그래도 어떤 선생님이 소설이 우리를 움직이는 건 바로 디테일 때문이라면서 위로해 주시길래, 그분을 개세영웅으로 떠받들기로 다짐했었다.)

  김영하는 어떡하든 밑줄 칠 대목 하나 없는 소설 쓰기를 목표한다고 했다. 어느 곳도 두드러지지 않으나, 하나의 덩어리가 묵직함을 준다면 그것이 가장 완전한 소설이라고 보는 것이다. 나와는 완전 상극이다. 나 같은 독자만 있다면 그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가령, 석봉 어미와 석봉의 배틀처럼, 그가 밑줄 칠 게 없는 소설을 쓰고, 내가 밑줄 칠 문장을 찾으려 한다면 내가 무조건 이기는 싸움인 게다(정신승리). 

  그렇게 치사하게 구는 와중에 이번에는 후렴구라는 말 하나가 걸렸다. 어떤 첫 경험을 한 이후에, 남은 삶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모두 그것의 후렴구가 된다는 말인 듯하다. 우리 삶에도 후렴구 같은 게 있을까? 있는 것 같다. 나의 후렴구를 만들었던 사건과 사람들이. 오래지만 여태 나를 배회하며 뒤이어 오는 것들의 바탕이 되는 특별함들이,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를 들여다본 시간이 제법 쌓이면 이런 후렴구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후렴구가 또 한차례 반복될 즈음에는 이 후렴구를 빚었던 사건과 사람들이 더 도도록하게 떠오른다. 후렴구가 작곡되던 그때가 그토록 뜨거운 순간이었다는 것을 뒤늦어 깨닫는다.

  그나저나 이런 졸렬한 독서 습관은 평소 일비일비(一悲一悲)하는 생활 습성과도 판에 박은 듯 똑같다. 그러니 매번이 절망이다. 큼직큼직하게 전체를 바라봄으로 일비일비하지 않는 대인배가 될 수 있을까? 과연?

  또 한편, 이 소설의 주요한 배경이 내가 쓴 논문 주제와 꼭 부합한다. 흉악범이 코마 상태가 되면, 그가 저지른 죄는 그의 의식과 함께 사라지는 걸까? 처벌할 수 없게 돼버린 죄는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밀양>에서의 전도연처럼, 흉악범의 기억이 사라지면 처벌할 죄도 함께 사라지는 거라면 피해자의 분노는 갈 곳을 잃는다. 논문에선 흉악범이 산송장이 돼도 처벌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는 게 결론이었다. 

  기억이 나를 이루는 데 얼만큼이나 중대한가를 소설로 쓰면 어떨까 생각해 봤다만, 이미 윤대녕이 그러했고, 김영하도 이번에서 그것을 다뤘다. 하지만 그들은, 나를 이루는 것으로 기억의 위력에만, 딱 거기에만 초점을 맞췄다.

  이번에도 그냥 그렇다는 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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