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otionable dionysos's heart :: 이승우 - 식물들의 사생활 (문학동네, 2000) 2014/08/01 20:33 by yorq






  • 엄습한 현기증이 나를 주저 앉혔고 뒤이은 무기력증이 다시 일어서지 못하게 했을 뿐이었다. (22쪽)

  •  큰아들이 자신의 혐오스런 몸뚱이를 주체하지 못하고 몸 속의 욕정을 배출하고 있는 동안, 그 문 앞에 서서 어머니는 무슨 기도를 한 것일까. 그녀의 신은 그 상황에서 그녀가 드릴 무슨 기도를 허락한 것일까. 나는 그녀에게 기도를 허락한 신이 있을 리 없다고 단정했고, 그러므로 그녀의 기도 또한 가짜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자 갑자기 어머니의 모습이 가증스럽게 여겨졌다. 나는 어머니의 어깨에 내 턱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서서 어머니를 불렀다. (25-26쪽)

  •  나는 어머니의 요청대로 하려고 했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어머니도 다시 보고 형도 다시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안의 짐승은 내 생각에 귀기울이지 않았다. 충동 앞에서 분별력은 열등하다. 그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내 몸이 충동적으로 퉁겨져나갔다. 나는 어머니의 몸을 스치며 유리문을 밀쳤다. 충동은 분별력보다 빠르다. 그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내 몸은 그녀가 제지할 틈도 주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27쪽)

  •  격정에 휘말린 내 말들은 완성된 문장을 만들지 못하고 중간에서 툭툭 끊어졌다. ... 내 불완전한 문장들은 울음 속으로 섞여들었다. (28쪽)

  •  어머니는 자신이 가진 온 힘을 손바닥에 실어서 내 뺨을 쳤다. 짐승의 흥분과 격정을 가라앉히기 위해 필요한 것이 단호하고 확실한 일격이라는 걸 어머니는 알고 계셨던 것 같다. (28쪽)

  • 타인의 비밀을 알아내려는 사람들이야말로 자기의비밀이 알려지는 걸 유난히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32쪽)

  • 그러나 그의 방은 늘 닫혀 있었으므로 그 안에서 그가 무슨 일을 하는지를 확인할 길은 없었다. 아니, 사실을 말하면 한 사람씩 차지하고 있는 우리집의 네 개의 방은 거의 항상 닫혀 있었다. 다른 사람이 침범하는 일도 없었고, 그런 걸 원하지도 않았다. 어머니만 가끔씩 그 규칙을 깼다. 우리는 타인들처럼 살았다. 그러나 원망도 없었고 불편하지도 않았다. (35쪽)

  •  정상적인 조절 메커니즘이 와해되면 정신 안쪽에 억압된 채 쌓여 있던 부정적인 기운이 어느 순간 외부로 폭발하게 되는데, 그것이 발작이라는구나. 발작이 어떤 양상을 띠고 어떤 길을 택해 분출되는가는 사람마다 다른데, 형의 경우는,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성욕의 분출로 나타나는 것 같다고 한다. (39쪽)

  •  사람에 대한 관심이 엷어지면서 자연물에 대한 친화력이 생겨나는 것은, 장려할 일인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으나, 이상한 일도 아니고 나무랄 일도 아니었다. (46쪽)

  •  그의 목소리가 깊은 바다에 떨어지는 닻처럼 어두운 숲속으로 유영해 들어갔다. 나는 끼어들 수도 없었고, 끼어들 내용도 없었고, 끼어들고 싶지도 않았다. (47쪽)

  •  나는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하는 것이 결코 허물이 될 수 없다는 명제에만 편집적으로 집착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은 떳떳하고 자랑스럽고 나아가 바람직한 것이다. 사랑의 대상이 누구든. 나는 사랑의 보편성에 매달렸다. 하나의 관념, 또는 추상화된 사랑을 붙잡고 늘어졌다. 그러나 진공 상태로 포장되어 있는 사랑이란 없다. 사랑은 언제나 그 사랑이 유발되고 고백되고 실연되는 특별한 상황을 가지고 있다. 모든 사랑은 상황 안에서의 사랑인 것이다. 모든 사랑이 특별한 것은 그 때문이다. 나는 그 점을 간과했다 .의도적인 눈감기. 필요가, 혹은 욕망이 어떤 진실에 대해 눈을 감게 하고 새로운 진실을 창출한다. 
     그리하여 나는, 그녀에 대한 내 사랑이 어째서 허물인가, 무엇이 내 사랑을 당당하지 못하게 만드는가, 하고 물었다. 나는 나에게 묻고 스스로 대답했다. 그것은 형의 존재였다. 나는, 하필이면 형의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을까? 하고 묻지 않고, 왜 내 사랑 앞에 형이 장애물로 있는가? 하고 물었다. 모든 생각이 나로부터 비롯하고, 나를 중심으로 돌고, 나에게서 멈췄다. 내가 태초였다. 내가 있기 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의 사랑이 있기 전에는 어떤 사랑도 없었고, 또 없어야 했다. 나의 사랑이 있기 전에 있었던 어떤 사랑도 실체가 아니었다. 실체가 아니므로 인정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나의 사랑이 있기 전에는 형의 사랑도 없었고, 없어야 했다.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실체로 인정할 수 없었다... 이쯤 되면 심각하지 않은가? 이쯤 되면 위험하지 않은가? 그랬다. 내 사랑은 심각한 사랑이었고 위험한 사랑이었다. 
    (62-63쪽)

  •   "... 잘 모르겠어" 순미는, 느낌은 있는데 실체가 분명하게 잡히지 않는다는 뜻인지, 아니면 어렴풋하게 잡힌 그 실체를 자기 입으로 밝히기가 좀 거북하다는 뜻인지, 말꼬리를 얼버무렸다. (62-63쪽)

  •  한 가지 생각에만 맹목적으로 집착하게 만드는 이상한 열정은 터무니없이 과장된 자신감을 생산해냈다. 내가 이렇게 그녀를 사랑하는데 그녀가 나를 사랑하지 않을 까닭이 없다는 확신 (71쪽)

  •  나는 나의 열정이, 그것이 비록 맹목이라고 하더라도, 타인을 위해할 수도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으니까. 나의 열정은, 그것이 비록 맹목이라고 하더라도, 단지 나 자신의 문제일 뿐이고, 그러므로 나 자신을 위해할 수 있을지는 혹시 몰라도, 타인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73쪽)

  • 나는 무엇인가 ... 비로소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나 자신의 위상에 대한 성찰이 찾아왔다. (75쪽)

  • 그날, 형에게 일방적으로 얻어맞으면서도 아무런 통증을 느끼지 못했던 것은 그녀의 그런 표정이 내 정신을 마취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그 마취는 좀처럼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마취가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으므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했다. (79쪽)

  • 그러자 더 이상 집에서 형과 함께 지낼 자신이 없어졌다. 형은 끊임없이 그녀를 상기시킬 것이므로. (79쪽)

  •  나는 어머니가 애입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만일 개입을 하고자 한다면 엄정하게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머니에게 엄정한 중릡을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었고, 따라서 어머니는 그 일에 개입해선 안 되었다. (81쪽)

  •  카메라는 그의 눈이고 그의 입이었다. 가장 정확한 눈이었고 가장 정직한 입이었다. 카메라 없이는 그는 아무것도 보지 못해쏘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81쪽)

  •  그렇지만 나는 곧 부득이한 사정이 생겨 자기 몸처럼 아끼는 카메라를 처분하러 온 사진 애호가의 안타깝고 섭섭한 기분을 연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은 부득이한 사정이 생겨 자기 몸처럼 아끼는 카메라를 처분하러 온 사진 애호가의 안타깝고 섭섭한 기분을 충분히 이해하는 카메라 상점 주인을 연기하려고 애쓰면서 금고를 열었다. 우리는 둘다 연기자였다. 하기야 누군들 연기자 아닌 사람이 있을까. 우리가 연기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은 상대방이 이미 고유한 배역을 맡고 있기 때문이며, 나 역시 고유한 배역을 맡은 자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역할극의 무대다, 세상은. (82-83쪽)

  •  사복을 입은 형사들이 집에 찾아와 형의 방을 샅샅이 뒤졌다는 걸 나중에 들었다. 그들은 형의 사진들을 모조리 가지고 갔다. 그것이 형과 형의 동료들을 연행해가고, 형을 군대로 끌고 가고, 형의 다리를 잘라내고, 그리고 형에게서 사진을 빼앗아갈 줄 어떻게 알았겠는가?
     형은 다리를 잃었고, 사진도 잃었다. 그 이후 그는 사진을 찍지 않았다. 그리고 형은 순미까지도 잃었다. 그녀와 어떻게 헤어졌는지 나는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은 지금 형 곁에 그녀가 없다는 사실이다. 나는 카메라만 가져갔지만, 그는 너무 많은 걸 잃었다. 내가 팔아치운 카메라 속의 필름과 그날 내가 구매장부에 적은 형의 이름과 주소가 그 모든 불행한 사건들에 어떤 단서를 제공했으리라는 강박증이 나를 견딜 수 없게 한다.
     그것이 내 빚의 내용이다. 나는 채무자다. 내 빚은 크고 무겁다. 때때로 나는 남은 내 인생이 형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 있는 것처럼 느낀다. 
    (84쪽)

  • 그런데 이제, 나의 그런 입장과는 달리 그녀를 찾아야 한다는 내부로부터의 요청을 받은 것이다. 그것이 논리적 귀결이라기보다 그저 충동에 불과한 것이었지만, 충동이 가진 계시적 성격, 즉 일종의 초현실적 영험함에 대한 믿음이 나에게는 있었다. 그녀를 찾아야 하는 일이 숙제처럼 여겨졌고, 그러자 만나서 어떻게 한다는 작정 같은 것이 없는 채로 그 일을 미루면 안 될 것 같아졌다. 갑자기 마음이 조급해져서 나느 서둘러 길을 내려왔다. (96쪽)

  •  나는 일종의 서글픔을 느꼈다. 서글픔은 물처럼 내 가슴속에서 출렁거렸다. 나는 가슴속의 물을 쏟기라도 할 것처럼 집까지 전속력으로 달렸다. (97쪽)

  • 내가 전화를 걸 때의 상황과 그녀가 전화를 받고 있는 상황 사이의 그 현격한 거리감이 내 의식의 회로를 엉망으로 헝클어놓은 상태였다. 저 모습을 보면서 통화를 할 수는 없다, 하고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105쪽)

  • 꽤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나는 고작 그녀를 엿보는 자가 되어 있을 뿐이지 않은가. (106쪽)

  • 나는 그것이 아마도 그녀가 지나온 시간의 자국일 거라고 편리하게 생각했다. (111쪽)

  • 그녀의 마음속에 무언가 이물스러운 것이 웅크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111쪽)

  • 음지식물 같던 그녀의 얼굴 위로 아주 짧은 순간 의구심이 떠오르는가 싶더니 곧 당혹으로 바뀌었다. (112쪽)

  • 나는 그녀의 둥글게 굽은 어깨에 손을 얹고 싶었다. 그녀의 굽은 어깨를 가만히 토닥거리며 아무것도 걱정할 게 없다고, 삶이란 생각처럼 엄숙하지도 않고 기대처럼 정연한 것도 아니라고, 맑았다가 흐리고, 비가 오다 해가 뜨는 거라고, 그런 게 삶이라고 속삭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122쪽)

  • 흰 비늘을 반짝이며 몸을 뒤채는 바다가 눈을 시리게 만들었다. (126쪽)

  • 마치 야생의 숲이 자기 품을 활짝 열고  그 안의 바다를 꺼내 보인 것처럼 여겨졌다. 야생의 숲이 자신의 옷자락 속에 바다를 품고 있다는 내 생각은 어딘지 신비스럽고 설화적인 데가 있었다. 신성하지 않은 숲이 어디 있을까? 모든 숲은 태초를 품고 있다. 숲은 최초의 신전이었고, 그 신전에서 어떤 나무들은 신성이 깃들인 것으로 숭배되었다. (126쪽)

  • 사람의 감정을 전달하는 가장 예ㅒ민한 신체 기관이 아마도 손일 거라고 나는 그 순간 생각했다. (130쪽) 

  • 그녀의 팔이 그의 몸을 안았고, 그의 팔이 그녀의 몸을 안았다. 그녀의 몸이 그의 몸 위로 올라갔고, 그녀의 얼굴이 그의 얼굴 위에, 그녀의 가슴이 그의 가슴 위에, 그녀의 팔이 그의 팔 위에, 그녀의 손바닥이 그의 손바닥 위에, 그녀의 입술이 그의 입술 위에 놓였다. 그들의 몸은 대칭을 이루며 한 몸을 만들었다. 그들의 몸은 대칭을 이루며 한 그루의 나무가 되었다. 마치 이제야 완전한 한 몸을 찾은 것처럼 그들의 몸은 자연스럽고 아름답고 신성해 보이기까지 했다. 하늘과 땅, 그리고 바다, 어쩌면 지하 세계까지 관통하고 있을 한 그루의 야생의 나무가 감정과 감각의 체계를 헝클어놓았기 때문일까, 뻔뻔스럽다거나 혐오스럽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뻔뻔스럽거나 혐오스러운 쪽은 숨어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나 자신이었다. 그들은 현실 밖에 있었고, 나는 현실 속에 있었다. 현실 밖의 세계는 정결했고, 현실 안의 세계는 추했다. 온전히 이해했다는 뜻이 아니라 이해의 차원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는 뜻이다. 나 자신이 너무나 수치스러워서 더이상 망원경을 눈에 대고 있을 수가 없었다는 뜻이다. (131쪽)

  •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너무 진지하고 엄숙했다. 얼핏 침울함의 정조까지도 느껴졌다. (133쪽)

  • 형의 성대 속에 있던 의문문이 나의 성대에도 있었다. (135쪽)

  • 무관심과 최소한의 대화와 불간섭은 관계의 최악의 경지임에 틀림없었다. (136쪽) 

  • 망설임과 머뭇거림이 어머니의 성대에서 빠져나오려는 말들을 붙잡고 있었다. 어머니는 피하고 싶은 숙제를 앞에 두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147쪽)

  • 일부가 전부라는 격언은 이 경우에 맞춤하게 들어맞는다. 공개되지 않았던 내용을 공개하는 것은, 그것이 비록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전부를 공개하는 것과 같다. 공개되지 않은 일부는 공개된 전부보다 항상 크다. (149쪽)

  • 어머니가, 그때 나는 스물한 살이었다, 하고 말했을 때 나 가슴이 철렁 소리를 내며 내려앉았다. 그것이 무엇이었을까? 어머니는 강요당한 진술을 하듯 힘들게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는데 왜 내 가슴이 갑자기 철렁 소리를 내며 내려앉았을까? 말하자면 그것이 증거였다. 어머니에 의해 말해질 내용들이 단지 어머니만의 삶은 아닐 거라는 예감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증겨였다. 어머니에 의해 말해질 내용들이 곧 우리들에 대한 선고이기도 할 거라는 예감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증거였다. (149쪽) 

  • 어머니의 세상은 너무 좁았으니까. 스스로 그렇게 말했으니까. 세상의 크기는 세상을 인식하는 사람의 인식의 크기를 넘지 못하는 법이니까. (150쪽) 

  • 그녀는 내가 했던 말을 단어나 문장의 뜻으로가 아니라 말하는 이의 진정을 헤아림으로써다 알아들었다. (160쪽)

  • 소문이 다양한 만큼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167쪽)

  • 그렇게 숨김없이 감정을 드러내는 자신에 대한 이해할 수 없는 대견함을 은근히 과시하면서 자기가 알고 있는 내용을 전해주었다. (168쪽)

  • 그러나 가망 없는 꿈이었고 이제는 그것이 가망 없다는 것쯤 모르지 않는데도, 모르지 않는다고 생각해왔는데도 빌미만 주어지면 뽀루지처럼 툭툭 불거져나오는 미련을 어떻게 해볼 수가 없었다. 사람의 마음이란 게 참 미묘하다는 생각은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188쪽)

  • 내 속마음은 그녀를 보고 싶어했는지 모르지만, 그 마음이 더 크고 절실한 동기였는지 모르지만, 나를 설득하고 내가 설득해서 내세운 표면의 동기는 형과 사진이었다. 사진을 다시 찍게 함으로써 형을 세상과 연결시키려는 내 이타적인 동기에 가해질 부도덕의 혐의가 두려워서 나는 부러 내 속마음을 들여다보지 않으려 했는지 모른다. (189쪽)

  • 남천은 공간만 비현실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곳에서는 시간의 흐름도 어릿어릿했다. 흐르는지 넘치는지 맴도는지 숨죽이는지 알 수 없는 것이 그곳의 시간이었다. (189쪽) 

  • 모직 커튼의 성긴 틈 사이로 햇살이 비집고 들어왔다. 먼지들은 햇살을 먹기 위해 하루살이처럼 날아다녔다. 그 흐름 속으로 음악이 미끄러져 들어갔다. (193쪽)

  • 찡그린 얼굴이 마음의 괴로움을 호소하고 있었다. (196쪽) 

  • 햇살이 거미줄처럼 살갗에 달라붙는 거리를 걸으면서였다. (199쪽)

  • 순미는 울었다. 그녀의 여린 영혼은 울음으로밖에 자기를 표현하지 못했다. (207쪽)

  • 내 말에 내 속 사람이 감동을 한 것일까? 처음에는 나도 속을 뻔했다. 그러나 꼭 그래서는 아니었다. (209쪽)

  • 아직 꿈에서 깨어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꿈을 데리고 밖으로 나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213쪽)

  • 그가 그녀를 사랑하는 것만큼 그녀도 그를 사랑해요. 그래서 그들은 행복해요. (214쪽)

  • 나는 내가 맡은 역할을 상기했다. 처음에 나는 형을 만나게 하겠다는 명분으로 그녀를 찾았고, 그녀는 마침내 형을 만나겠다고 했다. 창녀의 신분을 내세웠지만, 그것은 아마도 그녀가 내세운, 내세우지 않을 수 없는 명분이었을 것이다. 내가 그녀를 찾을 때 명분이 필요했던 것처럼 그녀 역시 형을 만나기 위해서는 명분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들 사이에 내가 있다. 나무가 되고 싶은 형과 창녀가 되고 싶은 순미 사이에 내가 있다. 나무가 되고 싶은 형과 창녀가 되고 싶은 순미의 염원의 안쪽 동기는 같다. 그것은 사랑이다. 더 정확하게는 좌절된 사랑에 대한 보상이다. 그들은 나무가 되고 창녀가 되어서라도 이루어지지 않았던 사랑을 이루려고 한다. 나무가 아니고 창녀가 아닐 때는 이룰 수 없었던 사랑을 나무가 되고 창녀가 되어서 이루려고 한다. 그들의 염원은 현실 속에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꿈이 필요하다. 비현실, 이 세상에는 없는 무대가 필요하다. 내 역할은 정해져 있다. 그리고 나는 이미 그 역할에 충실하기로 작정한 터였다. (228쪽)

  • 남을 이해시키기 위해 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 나를 이해시키기 위해 남이 하는 말처럼 들렸다. (228쪽)

  • 그녀가 꿈속으로 들어갔다, 는 것이 아니라 그녀에 의해 그 공간이 꿈으로 바뀐 것 같은 느낌. (230쪽)

  • 내 목소리는 혹시 거절당할지 모른다는 우려와 거절당하면 안 된다는 간절함으로 떨렸다. (234쪽)

  • 나는 없어질 수 있는 사람이지만 그는 그럴 수 없는 사람이다. 나는 없어져도 되는 사람이지만 그는 없어지면 안 되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없어졌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239쪽)

  • 나무는 욕망하고 사랑한다. 나무는 누구보다 더 크게 욕망하고 누구보다 더 간절하게 사랑한다. 큰 욕망과 간절한 사랑이 그들을 나무가 되게 했다. (245쪽)

  • 내 말은 천박하고 빈궁했다. 내 말은 정신의 초월도 무감감도 꿈꾸지 않는 자의 말이었다. 혹은 정신의 초월이나 무감각을 꿈꿀 만큼 고통스러워본 적이 없는 자의 말이었다. 나의 사고와 행동은 현실의 빗금을 넘어본 적이 없었다. 그것이 내가 형과 아버지에 대해 느끼는 열등감이고 소외감의 내용이었다. (254쪽)

  • 어둠은 친근해졌지만 침묵은 여전히 좀 불편했다. (256쪽)

  • 어머니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내가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될 수 없었다, 하고 아버지는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 (260쪽)

  • 아버지가 말하는 어머니의 순결이 정확하게 무엇을 뜻하는지도 솔직히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아버지를 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람에 대한 이해는 단어의 뜻을 이해하는 것과는 같지 않았다.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 그 사람이 사용하는 단어의 뜻을 이해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259쪽)

  • 숲속 어딘가에 심어져 있는 물푸레나무를 어느 순간 우리가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물푸레 나무가 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262쪽)

  • 아버지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어려워하는 것이다. 아버지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차마 접근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해를 못할지 모르겠다만, 나와 아버지 사이의 사랑의 방식이다. (265쪽)

  • 사랑은 다 다르다, 하고 나는 나에게 말했다. 사랑한다는 내용은 같아도 사람들이 사랑을 하는 방식은 하나도 같지 않다. 백 명의 사람들은 백 가지 방식으로 사랑한다. 그러니까 특별하지 않은 사랑은 하나도 없다. (266쪽)

  • 날이 밝으면 나는 형을 데리고 남천에 갈 것이다. 남천에는 순미가 있다. 그녀는 내가 사랑하는 여자이다.아버지가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처럼 나는 그녀를 사랑한다. 그러나 그녀는 형을 사랑한다. 어머니가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처럼 그녀는 형을 사랑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어머니가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순미가 나를 사랑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2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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