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sonable apollon's mind :: 김시천 외, 『철학으로 과학하라』, 웅진지식하우스, 2008. 2014/09/02 22:03 by yorq


 





:: 1-1. 과학적 사실은 언제나 가치중립적일까 (한양대 이상욱 교수)

 

주요어

 : 실재-사실, 판단-사실, (과학에서의) 인식적 가치-비인식적 가치과학적 사실의 가치중립성

 

문제제기: 과학적 사실은 객관적이기에 높은 신뢰를 얻고 지적 권위를 가지며, 일상에서의 논란을 종식시킨다. 이러한 과학적 사실이 특정 가치에 의해 편향되거나 왜곡되면 상당한 혼란과 피해를 낳을 것이다. 그러면 정말 과학적 사실은 가치중립적인가? 이를 고민하기 위해 과학적 사실과 가치라는 개념을 분명히 해두자.

 

(과학적) 사실

1. [실재-사실]: 실제로 일어났거나 진행 중인 사건, 그것에 대한 진술 

                  예: 얼음이 녹아 물이 되었다. 1950년에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2. [판단-사실]: ([실재-사실]에 대해) 관찰이나 경험을 통해 믿을 만한 것으로 확립된 내용 

                  예: 사건의 증거를 종합해 내린 법정 판결문 등

1.과 2,의 관계: [판단-사실]이 추론을 통해 [실재-사실]을 해석하고, 새로운 증거가 나오면 믿고 있던 [판단-사실]을 수정해 [실재-사실]을 새롭게 이해하기도 한다. (: 양자역학(판단-사실)이 뉴턴 물리학(판단-사실)에 의해 확고부동했던 [실재-사실]에 균열을 가함) / 둘 다 오류 가능성을 포함하나 [판단-사실]이 확률이 더 높다.

 

가치: 사실을 넘어서 사건이나 대상에 추가적으로 부여된 것 

            예: 인사를 잘한다(사실) 예의바르다(가치)

 

사실과 가치의 관계: 특정 가치가 과학적 사실로 포장될 때가 있다. (: 우생학 등) / 가치는 대부분 타당한 사실에 근거한다. (: “겨울은 추운 게 좋다.”는 사실에 대한 가치는 겨울이 추우면 다음 해 농사가 잘된다.”는 경험적 사실에 의해 지지받는다.)

 

과학에서의 가치

1. 인식적 가치: 과학적 지식을 얻는 과정(과학자들이 [판단-사실]을 결정)에서 사용되는 가치 / 이론의 단순성설명력에만 관심을 둔다. (더 단순하게, 더 많은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이 선호됨) / 합의가 쉽다.

2. 비인식적 가치: 지식을 얻는 과정과 관련 없는 가치 / 곧 윤리적이거나 사회적인 가치/ 논란의 여지가 있다.

 

과학적 사실(실재-사실, 판단-사실)과 가치(인식적 가치, 비인식적 가치)의 중립성

 

과학적 사실

실재-사실

판단-사실

과학적

 

가치

인식적 가치

1. 자못 실재-사실은 인식적 가치와 상관없이 독립적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재-사실마저도 인식적 가치에 따라 달라진다. 인식자(관찰자)로서의 과학자들은 자신의 인식적 틀이란 한계 안에 갇혀 관찰 결과를 내놓기 때문이다(이론 적재성). 마치 파란 안경을 끼면 파랗게, 빨간 안경을 끼면 빨갛게 세상이 보이듯, 어떤 도구를 삼느냐에 따라 상이한 실재-사실이 도출된다. 과학자들은 수학적 틀을 선호하는데, 그것은 수학적 기법으로 이해된 실재-사실을 밝힐 뿐이다. 그것은 총체적 진리가 아니라, 이후에 보완되거나 대체돼야 하는 조각 진리이다. 과학자들은 여럿 중 어느 것이 더 낫느냐를 판단하기에, 실재-사실은 인식적 가치로부터 중립적일 수 없다.

3. 판단-사실은 인식적 가치에 의해 달라질 수가 있다. 과학은 다양한 인식적 가치에 의해 연구 방법이 정해지기 때문에 연구 방법에 따라 다양한 판단-사실이 나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판단-사실은 인식적 가치로부터 중립적이라고 할 수 없다.

4. 과학적 판단-사실이 비인식적 가치에 의해 오염되는 때를 경계해야 한다. 과학기술의 활용을 둘러싼 첨예한 윤리 논쟁이 모두 이에 해당한다. (인간복제, 핵실험, 우생학 등) 따라서 판단-사실은 비인식적 가치에 중립적인 것이 바람직하다.

한편으론 한정된 연구자원 아래에서 어느 연구 주제를 택할지에 대해서 비인식적 가치가 도움을 줄 수 있다. (탄저균의 살생력을 밝혀내는 연구 vs 악성 전염병의 원인을 밝혀내는 연구 - 인류 복지라는 비인식적 가치를 배제한다면 둘 중 어느 것을 선택할지 판가름할 수 없다)

비인식적 가치

2. 실재-사실은 그 정의상 도덕과 윤리와 같은 비인식적 가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따라서 실재-사실은 비인식적 가치로부터 독립적이며, 가치중립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과학적 사실이 인식적 가치(단순성과 설명력)만을 따랐을 때에도 중립적이지 못한 이유

 - A이론: 단순성이 높지만 설명력이 낮음 / B이론: 단순성이 낮지만 설명력이 높음

 ⇨ 과학자들이 인식적 가치만을 적용해 AB[판단-사실]을 얻었더라도, 어느 이론을 선택하고 선호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견 차이가 발생한다.

 

저자의 결론: [과학적 실재-사실]이 비인식적 가치로부터 가치중립적인 것 외에 과학적 사실은 가치중립적이지 않다. 과학의 객관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가치 의존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따라서 과학적 사실이 가치중립적이어야 하는가?”보다 과학적 사실이 어떤 방식으로 가치 의존적일 때 바람직한가?”를 따져봐야 한다.

 

✤ 질 문

 - 과학적 사실은 가치중립적이어야 할까? 4의 경우에 유의미하다. 따라서, “과학적 판단-사실은 비인식적 가치와 독립적이어야 할까?”

 - 과학적 사실은 가치중립적일 수 있을까? 3의 경우를 제외하고 없다. 하지만 그것은 용어의 정의에 의해 원천적으로 차단된 것이다. 따라서 왜 과학적 사실은 가치중립적일 수 없는가?”

 - 모든 과학적 사실은 조각 진리일까? 1, 3에서 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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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부분의 합은 전체일까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김성우 연구원)

 

주요어: 근대 과학의 환원주의’, 갈릴레이의 자연의 수학화’, 데카르트의 학문의 수학화’, 뉴턴의 기계론적 세계관

 

문제제기: 환원주의는 복잡한 전체를 기본 요소로 쪼개 그것으로 다시 전체를 이해하는 근대과학의 방법이며, 이런 환원주의의 설명력은 첨단 문명을 이루는 토대가 되었다. 그렇다면 환원주의에 따라 쪼개진 부분(기본 요소)을 다시 합치면 전체가 나온다고 볼 수 있을까?

 

환원주의: 전체 모습을 몇 개의 성분들의 합으로 또는 단 하나의 성분으로 설명하려는 태도를 말한다. 과학은 한 이론을 더욱 근본적인 다른 이론으로 환원하여 설명한다. : 우리 가족아빠엄마/ 뜨거운 열분자의 운동 / 번쩍이는 빛전기방전 / 유전자DNA분자 / H2O / 생명체세포 덩어리 / 개인 삶의 역할유전자 운반(진화론)

 

갈릴레이의 자연의 수학화’: 갈릴레이는 자연을 수학적인 구조로 파악해, 수학적인 언어 없이는 자연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보았다. 즉 자연의 모습을 수를 이용한 식으로 표현함으로써, 인간은 자연을 예측 가능한 지배의 대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 ‘자연의 수학화를 위해선 1과 2의 구분이 필수적이다. 
1. 객관적인 성질(제일성질):  수학적인 언어로 읽을 수 있는 (계량화 되는) 사물의 성질이 과학 탐구의 대상이다. : 크기, , 운동2. 주관적인 성질(제이성질): 수학적인 언어로 읽을 수 없는 (계량화 되지 않는) 사물의 성질이 과학 탐구의 대상이 아니다. : 향기, , 소리, 색깔

이러한 갈릴레이의 규정과 배제로 근대과학의 탐구 영역이 설정되었다. 당시 유럽 과학자들에게 자연의 탐구는 수학적으로 우주를 설계한 신의 섭리를 발견하는 작업(예배)으로 여겨졌다.

 

데카르트의 보편수학(학문의 수학화)’: 데카르트는 모든 학문을 수학으로 환원시키는 보편 수학을 기획한다. 수학적인 방법을 보편적으로 적용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인식에 이르는 유일한 길로 보고, 이를 통해 모든 학문이 수학과 같은 정밀성과 체계성을 확보한다고 믿었다.

 

    1. 공리-연역적 구조: 연역 추론은 전제가 참이라면 반드시 그 결론도 참인 추론이다. 따라서 연역 추론을 사용한 사유 방식은 참된 지식을 얻기 위한 좋은 방법이다. 물론 전제가 반드시 참일 경우에만 그렇다. 그래서 수학에서는 반드시 참일 것이라고 생각한 명제를 가정하여 공리라 부르고 그 공리로부터 연역적으로 추론하여 다양한 정리와 식을 증명해낸다. 이러한 사고방식을 공리-연역적 구조라고 부른다.

   2. 기하학적 방법: 기하학은 도형을 다루는 학문이다. 그런데 이 세계에는 매우 다양한 도형들이 있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무한하다. 그렇기 때문에 연구자의 입장에서 보면 도형들을 개별적으로 연구하는 것은 그 방법에 끝이 없으므로 막막하다. 그래서 수학에서는 수많은 종류의 도형을 삼각형이라는 도형으로 쪼개어 생각하는 방식을 채택한다. 이제 삼각형의 성질만 제대로 이해한다면 모든 도형의 성질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식의 사고방식을 환원주의적 사고방식이라고 한다.

   3. 계산과 측정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형식적 동일성: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진 사물들의 관계를 파악하기 위해서 사물들의 성질을 동일한 어떤 것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동일한 성질이어야만 차이점과 동일한 점을 찾을 수 있고 그 차이점과 동일한 점을 통해 사물들의 관계에 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수학에서는 이를 위해 모든 사물들의 성질을 ()’라는 하나의 성질로 파악한다. 그리하여 사물들의 관계를 수를 통해 계산하고 측정할 수 있게 된다.

 

계몽주의의 이상: 학문은 수를 통해 자연을 추상화하여 다룬다. 즉 추상화된 자연은 수학화된 자연이다. 계몽주의는 제각기 다른 것들을 수로 환원하여 (형식적으로 동일한 단위로 통일하여) 계산함으로써 그것을 서로 비교 가능하게 만든다. 수로 환원될 수 없는 것은 가상에 불과하다. 현대 실증주의는 이를 시와 정서의 영역으로 추방했다.

 

뉴턴의 기계론적 세계관’: 뉴턴은 갈릴레이의 자연의 수학화와 데카르트의 학문의 수학화를 집대성하여 수학에 입각한 기계론적 세계관을 수립한다. 전체를 이해하기 위해선 전체를 각 요소로 분해하고 다시 조립해야 한다(: 시계). 이로써 모든 존재는 하나의 단위(원자, 부품)가 뭉쳐 이루어진 기계로 이해되며, 기계적인 작용은 수학의 식으로 설명될 수 있다. 이런 분해와 결합을 통한 환원주의의 방법이 현대 과학의 주류가 되었다. 이에 따라 전체는 부분의 합에 지나지 않는 것이 된다.

 

유기체론: 기계론은 자연이 기계처럼 어떤 원리에 의해 움직이기에 수학을 통해 그 원리를 규명한다면 자연을 인간이 완벽하게 지배할 수 있다는 생각한다. 반면, 유기체론은 자연이 내부적으로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해가고 있기에 하나의 원리로서 자연을 설명하는 것은 어려우며,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므로 자연을 지배하는 것이 아닌 자연에 적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기체론은 자연을 전체성, 관계성, 역동성으로의 통일성으로 설명하며, 자연을 단순히 부분들의 합이 아니라 생동하는 전체의 시스템으로 본다.

 

신과학운동: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삼은 기계론적 세계관이 인류를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했지만,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 자원 고갈 같은 현대의 위기들을 낳게 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반성과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신과학운동이다. 이는 기계론적 세계관에서 유기체적 세계관으로의 전환을 촉구하는 것인데, 신과학운동 사상가들이 내세우는 새로운 자연 개념은 동양 전통의 자연관과 흡사하다. 동양 전통의 유기체론에서 자연은 전체와 부분이 상호 작용하고 협력하면서 스스로 조직을 유지하고 발전하는 창조적인 것이다. 전체가 단순한 부분의 합 이상이라고 믿고 부분과 전체 사이의 관계와 상호 작용을 중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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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장마음은 물질로 환원할 수 있을까 (서강대 철학연구소 김영건 연구원)


*주요어: 마음, 데카르트의 이원론, 심신동일론 (철학적 행동주의(=분석적 행동주의), 일상적 심리학, 인과적 기능주의, 유물론적 제거주의)

 

마음(정신): 우리의 생각이나 감정, 기억 등의 심리 작용이 일어나거나 자리 잡는 공간이며, 정신활동을 통합하는 주체이다(자아, 자의식, 영혼). 그럼 마음이란 것의 정체는 무엇인가? 마음은 무엇으로 구성되며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가?

 

마음을 왜 물질로 환원하려 하는가?

: 마음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려 하기 때문이다. 과학은 기본적으로 유물론에 기반한다. 과학의 탐구 대상은 경험적인(우리의 감각으로 포착할 수 있는) 물질세계에 한정된다. 나뿐 아니라 모두의 감각으로 확인될 수 있는 대상만이 과학의 영역이다. 그 바깥의 영역은 비과학 혹은 미신으로 취급된다. 그래야만 과학은 증명될 수 있고, 실제적인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렇게 과학은 세계를 물질로 환원하여 설명하려 한다. 마음의 물질적 토대는 신체(특히 두뇌)이므로, 과학은 신체에 근거해 마음을 규명하려 한다. 과연 우리의 정신은 신체(물질)와 무관하게 자립적으로 존재하는가? 혹은 우리의 마음은 신체라는 한계 안에 갇혀 있는가?


데카르트의 이원(二元)<물질 환원 불가론> “신체가 없어도 마음은 있다: 데카르트는 마음이 신체 없이도 자립적으로 존재한다고 보았다. 마음과 육체를 두 가지 실체(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는 자립적 존재)로 보는 것이 데카르트의 이원론이다. 마음은 신체에 의존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에, 신체가 소멸해도 마음은 소멸하지 않는다. 데카르트의 코기토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에서 나는 모든 것을 제하고도 거기에 남아 있는 순수한 정신 그 자체를 뜻한다. 이런 그의 입장은 우리가 죽어도 정신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영혼불멸설로 이어진다. 종교에서 말하는 사후 세계란 모두 이런 영혼불멸설에 근거한다. 죽음 이후에도 나의 정신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되리라는 믿음, 이런 믿음은 오히려 신체보다는 정신이 나를 이루는 더욱 근본이라고 생각하게 한다. '영혼'이란 개념은 현대에도 무리 없이 폭넓게도 사용된다. 신체가 죽어 영혼도 사라진다면 죽음 이후에 세계는 존재할 수 없다.

  ☞ 비판: 신체의 수명은 다하더라도, 영혼이 살아남아 사후세계로 이어진다.”는 명제는 한낱 믿음에 불과할 뿐, 그것을 넘어 사실로써 인정받을 수 있을까?

 

심신(心身)동일론 <물질 환원론> “신체 없이는 마음도 없다: 심신 동일론에 따르면 신체가 죽으면 마음도 죽는다. 마음은 자립적인 실체가 아닌, 신체에 의존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심신 동일론은 마음이 결국 두뇌 작용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인간의 마음과 두뇌 작용을 같다고 보는 것이다. 물이 H20와 동일하고, 빛이 전기 방전과 동일하듯, 마음과 두뇌 또한 의미하는 바가 각각 다르지만, 동일한 것으로 간주한다.

  ☞ 비판: 물질 환원론이 신체와 떨어진 영혼이 거짓이라 해서, 영혼에 대한 사람들의 바람과 상상력이 멈추게 될까?

  ☞ 물질 환원론에 따르면, ‘사랑한다는 마음의 상태는 뇌에서 도파민이 분비되어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혈액이 급히 공급되어 몸에서 열이 발생하고 흥분하게 되며 동공이 커진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런 설명이 사랑한다는 마음 상태에 대한 우리의 물음에 충분한 답이 되는가?

  ☞ 마음을 물질로 환원해 완벽히 해석하게 되면, 마음을 의도적으로 구성해낼 수도 있다. 그러면 로봇에게도 마음을 심어주어 로봇도 마음이 생길 수 있을까




데카르트의 이원론: 데카르트는 마음과 육체를 두 가지 실체(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는 자립적 존재)로 보았다. 마음은 육체(두뇌)에 의존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에, 육체가 소멸해도 마음은 소멸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이것이 죽어도 우리의 마음(정신, 영혼)이 불멸한다는 영혼불멸설’, 서구의 종교적 전통이다. 그러나 비판론자들은 마음은 육체에 의존해 존재한다고 보고, 육체는 실체이나 마음은 실체로 보지 않는다. 마음은 어디까지나 육체라는 기계 속에 갇힌 유령(길버트 라일)”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철학적 행동주의(=분석적 행동주의): 철학적 행동주의는 마음의 존재는 육체적 행동 성향으로 드러난다고 말한다(의미론적 환원). 마음이 먼저 있고 행동이 그것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이 나타나기 때문에 그것에 뒤따라 마음의 존재를 상정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가령 나는 아프다고 말하는 건 나만 알 수 있는 내 마음속의 적나라한 아픔 자체를 말하는 것 같지만, 실은 몸에 열이 나고, 식은땀이 흐르며 기침을 한다.” 등의 공적으로 관찰될 수 있는 행동 성향을 통해서라야 그것이 말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철학적 행동주의는 심적 언어를 행동 성향의 언어로 번역한다. 마음 자체를 이야기하기보다 마음에 대한 언어를 이야기함으로써, 마음이 실체라는 것을 부정한다.비판: 내가 직접적으로 느끼는 마음 현상의 내재적 특성(내가 분명하게 느끼는 어떤 본래적이고 감각적인 성질)은 정말 무시해도 그만인가? 과연 마음 상태가 행동 성향으로 완전하게(필요충분조건으로) 번역될 수 있는가?


일상적 심리학: 일상적 심리학은 철학적 행동주의가 말하는 것처럼 마음이 행동적 성향(물리적으로)으로 환원된다고 보지 않고, 마음 그 자체가 어떤 메커니즘에 의해 작동하고 있다고 본다. (그렇다고 데카르트주의처럼 마음이 두뇌로부터 분리된 실체라고 보는 것은 아니다.) 일상적 심리학은 심적 용어의 의미가 이론이나 개념체계에서 담당하는 역할과 기능을 통해 드러난다고 보는데, 그 이론이나 개념체계가 곧 일상적 심리학이라고 말한다.

 


심신 동일론(1:1관계): 심신 동일론은 인간의 마음이 두뇌 과정과 동일하다고 본다. 심신 동일론은 마음을 행동 성향으로 환원하는 철학적 행동주의를 비판하는 대안으로 제기된다. 물이 H20와 동일하고, 빛이 전기 방전과 동일하듯, 마음과 두뇌 또한 의미하는 바가 각각 다르지만, 동일한 것으로 간주한다. 다시 말해, 마음과 두뇌는 인식적으로 서로 다른 현상으로 나타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들이 서로 다르다는 주장은 성립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적어도 마음과 두뇌가 유형적으로 동일하다는 의미에서 마음은 두뇌 현상으로 환원되어 설명될 수 있다(유형적 환원).

비판: 마음 A가 물질 B로 완전하게 대응된다면, 마음 B는 물질 C, D, E로도 기술적으로 얼마든지 실현될 수 있다. 따라서 마음 A와 물질 B는 불가분의 일대일 대응이라 할 수 없다(분리 논증).

 


마음의 인과적 기능주의(:1관계): 심신 동일론에서는 인간의 마음이 두뇌 과정과 동일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인과적 기능주의는 동일한 마음의 상태가 서로 다른 물리적 상태에서 실현될 수 있기 때문에 단순히 인간의 마음이 두뇌 과정과 일대일 인과적 관계를 가진다기보다는, 마음은 인과적 체계 안에서 성립하는 인과적 기능 상태라고 주장한다. 두뇌의 어느 한 부분이 곧장 마음의 어느 한 부분이 되는 것은 아니라, 두뇌의 여러 부분의 작용이 마음의 어느 한 부분을 만들어 낸다고 보는 것이다. 즉 마음은 두뇌의 여러 부분이 함께 작용해서 만들어내는 결과물이다. 예를 들어 아프다는 마음의 상태는 두뇌의 한 부분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부분이 함께 만들어낸 상태이거나 여러 부분에서 각각 만들어질 수 있는 상태이다.

 


유물론적 제거주의: 데이비슨의 주장은 유물론적 제거주의를 비판하며 제기된다. 유물론적 제거주의는 일상적 심리학을 제거하려 한다. 일상적 심리학이 과학적 심리학으로 환원될 수 없으므로, 일상적 심리학을 민간 의술 정도로 치부해 과학적 심리학이 그것을 곧 대체할 것으로 본다. 일상적 심리학이 몰두하는 우리의 믿음, 욕구, 감각, 의식 등의 심적 현상을 부정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심적 현상은 우리의 행동을 설명하고 규제한다. 비록 우리의 마음이 물리적인 것에서 비롯된다 해도, 심적 현상은 단순히 물리적인 것 그 이상의 것으로 기능한다는 믿음에서 일상적 심리학이 성립한다. 이런 맥락에서 데이비슨은 일상적 심리학이 인과성의 원리로 작용하는 게 아니라 합리성의 원리로 작용한다고 본다. 합리성의 원리란 어떤 현상이 왜 일어났는지를 따지는 게 아니라,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따진다. 즉 물이 끓는 현상에 대해 기압과 온도를 이용해 물이 왜 끓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인과적 설명이라면, 누군가가 물을 뜨거운 열로 데웠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방식이 합리적인 설명이다. 그러니까 일상적 심리학은 마음 현상의 원인을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가능한 상황을 제시하면서 상관관계가 있음을 밝히기에 일정한 공감대를 형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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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장테크노피아의 세계는 가능할까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박영균 연구원)


*주요어기술기술결정론테크노피아디스토피아기술의 확장과 축소

 

기술: 인간이 지닌 특정한 힘을 확장하는 능력이다기술은 특정한 목적을 위해 수단의 효율성을 추구한다. (전화기-목소리의 확장전쟁무기-살상이동 수단-최대한 빨리 공간 이동)

 

테크노피아(technopia)와 디스토피아(distopia)의 공통점과 차이점


테크노피아

디스토피아

기술결정론(기술이 우리 사회의 운명을 결정할 것)에 기반

기술을 통해 우리는 질적으로 양적으로 더욱 행복한 사회를 이룰 것이다(자연적 한계를 넘어서는 생활의 윤택첨단사회)

기술에 의해 지배받는 우리는 노예 상태와 다름없는 불행한 사회를 이룰 것이다. (환경파괴자연 교란지구 종말)



테크노피아적 믿음의 세 가지 테제


자연은 생명이 없는 물리적 세계다.

고대의 인간은 자연의 일부로써 자연에 대해 수동적인 존재였다.그러나 근대의 인간은 이성을 통해 자연을 지배하는 이 세계의 주체가 되었다자연이 오히려 수동적인 존재가 되었다.

인간은 이성을 가진 주체로서이 세계의 주인이다.

기술은 인간의 힘을 체현하고 있는 도구로서 가치중립적이다.

인간은 이성을 통해 개발한 기술로 세계를 지배한다기술은 단지 도구에 불과하므로 그것은 가치중립적이며인간이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좋은 기술 또는 악한 기술이 된다.

 

디스토피아적 전망

기술이 가치중립적이란 믿음이 오해였음이 환경파괴 등을 통해 드러났다.기술은 인간이 지닌 힘을 증폭시켜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게 했다이는 동시에 기술이 타자를 지배하는 권력이 됨을 뜻한다기술의 확장과 동시에 이뤄지는 기술의 축소를 통해 본래 지닌 특성들(존재 가치)이 배제되면서 기술은 타자를 지배하는 권력이 된다급기야 기계는 인간을 지배한다테크노피아는 기술의 확장에 주목하지만디스토피아는 기술의 축소를 두려워한다기술의 확장으로 눈먼 기술의 축소에 대해 우리가 간과하고 있다고 디스토피아적 전망은 말한다.


기술의 확장 (테크노피아)

기술의 축소 (디스토피아)

망치는 못을 박기 위해 손의 능력을 확장시킨다.

-망치는 못을 박기 위한 능력을 확장시키다보니 손이 가진 움켜쥐는 능력접촉하는 대상의 상태를 파악하는 능력 등을 제거한다.

전화는 목소리를 증폭하고 원격적으로 전달한다.

전화는 직접 대면할 때 느낄 수 있는 감각들을 배제하고 제거한다표정도 눈빛도 제스처도 없이 전화는 오직 목소리라는 단일 감각만이 존재한다.

인터넷은 시공간을 초월한 소통을 가능하게 하여, ‘정신을 확장한다.

인터넷은 정신을 확장하지만 육체가 없다.


 
공존적 가치(기술이 구현되는 대상 외에 다른 것을 제거하거나 파괴하는 것이 아닌 함께 존재하는 것으로대등한 존재로 파악하는 것)와 생명적 가치(기술이 구현되는 대상이 생명을 가진 존재라면 생명의 소중함과 존귀함을 반드시 인지하여 기술을 구현)를 고려해야 한다.


기술결정론 비판

:  기술은 결정적인 것이 아니라 경향적이다그렇게 될 가능성은 있지만 반드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예를 들어수기로 쓸 때와 워드로 쓸 때수기는 느리기 때문에 숙고적인 글을 쓰는 경향이 있으나 워드는 빠르기 때문에 신문 기사 같이 쓰는 경향이 있다하지만 그것이 워드로 숙고적인 글을 쓸 수 없다는 말은 아니다인간은 얼마든지 이러한 문제를 통제할 수 있다.

 

생명적 가치와 미래의 선택

기술 그 자체의 힘으로 미래의 유토피아적 꿈을 이룰 수도 없지만 기술 없이 인류의 미래를 행복하게 만들어갈 수도 없다여기서 선택되어야 할 것은 기술이냐 자연이냐가 아니라 인간 자신의 존재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삶의 구성과 이를 위한 기술적 구현이다우리가 각각의 기술들 내부에 있는 목적들을 반성적으로 평가하고 기술들을 생명적 가치(기술이 구현되는 대상이 생명을 가진 존재라면 생명의 소중함과 존귀함을 반드시 인지하여 기술을 구현)’들에 부합하는 기술들로 바꾸어 갈 수 있다면 테크노피아적 꿈은 총체적인 지배의 권력으로 전화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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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장자연으로 돌아가면 행복할까 (진주교대 김명식 교수)



*주요어자연 대 인위자연주의자연주의의 오류

 

홉스와 루소의 자연

 

자연 상태

국가형성 (현재 상태)

홉스

리바이어던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인간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무서운 공간.

평화가 유지되는 상태 <긍정적>

루소

인간 불평등 기원론

몸도 마음도 건강한 상태”, 다수가 평화롭게 사는 소박한 삶의 공간.

개인의 자유를 억압해 평화를 파괴하는 상태 <부정적>

 

자연주의

자연주의란 인공적인 삶에서 벗어나 자연 그대로를 추구하며 소박한 삶을 살려는 경향이다자연주의는 물질문명과 인간 우월주의자본주의적 삶이 주는 폐해를 거부해 거기에서 벗어난 상태이다

물질문명: 물질문명은 자연뿐 아니라 인간의 삶도 물질로 환원한다돈이나 편리성 등을 척도로 행복한가 행복하지 않은가를 파악하며물질적 편리성을 추구하다보니 결국 인간 정신마저 물질의 노예가 되었다.

인간 우월주의: 자연을 공존의 대상이 아닌 인간을 위한 도구화와 정복의 대상으로 여겨 자연을 파괴하는 일이 나타난다. (환경오염지구 온난화 등)

자본주의적 삶: 이윤 극대화의 원리+모든 것을 상품화+인간 탐욕 ⇨ 자연과 인간을 병들게 함. (자본 논리에 따른 무분별한 개발,야만적인 목축)

 

자연주의가 놓치고 있는 것

1.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 현대 과학기술문명이 주는 풍요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자연적 삶의 방식으로 살라고 요구할 수 있는가? (생태 공동체의 대표격인야마시 공동체는 상당 부분 종교적 신념에 의해 운영된다.)

 

2. 자연적으로 사는 것이 바람직한가?

☞ (자연은 선하고인위는 악하다는 이분법에 따라자연의 모든 현상을 선으로 여겨자연적인 것은 자연적이기 때문에 전부 받아들여야 할까천재지변이나 자연적 질병을 극복하는 인공 기술이나 의술 등을 모두 거부하고자연의 처단에 곧이곧대로 순응해야 할까?

 

3. 자연 상태에서 나타나는 인간 본성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나? (자연주의의 오류)

☞ 자연주의 오류는자연 상태에 일어나는 사실명제를 인간이 추구해야 할 윤리적 행동인 당위명제로 연결할 때 생기는 오류이다소위 "~은 자연 세계의 법칙이기에 인간 사회도 그래야 한다."는 판단은 자연주의의 오류이다.


  예

  1.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강자만이 살아남는다별 수 없이 약자는 보호받지 못한다인간 사회도 그래야 한다(그렇다). 

  2. 살기 위해 다른 생명을 죽이는 건 죄가 아니다인간 사회도 그래야 한다(그렇다). 

  3. 모든 동물은 생존을 위해 본능대로 살아야 한다인간 사회도 그래야 한다(그렇다).

  4. 수컷은 자기 유전자를 확산하기 위해 여러 암컷을 만나고경쟁자인 다른 수컷과 그의 새끼를 죽인다인간 사회도 그래야 한다.(그렇다).

  ⇨ 자연적 존재로서 인간은 동물적 본성을 간직하고 있다하지만 인간은 자연적 존재인 동시에 도덕적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 사회도 자연 상태의 방식을 따라야 한다는 생각은 잘못됐다인간의 생물학적 본성에 대한 이해도 중요하지만 인간 삶에서 역사와 문화도덕이 갖는 의미를 무시해선 안 된다.

 

✤ 자연과 인위의 화해

자연적인 것은 다 좋고인위적인 것은 다 나쁘다(생태주의의 기본 명제)는 발상을 바꿀 때가 되었다물론 인위적인 것에는 부정적인 면이 많았다하지만 바람직한 인위마저 모두 거부할 필요는 없다받아들일 것과 거부할 것을 구분해야 한다자연과 인위를 대립하는 것으로 보는 시각을 새로이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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