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otionable dionysos's heart :: 앤드루 포터(Andrew Porter), 김이선,『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The Theory of Light and Matter)』, 21세기북스, 2011. 2015/05/23 23:59 by yorq





*구멍 
  •   나이가 들수록, 하루 이틀 전에 경험한 일보다 수년 전에 있었던 일을 더 생생하게 기억하게 된다고 한다. 그 말은 사실인 것 같다. _11쪽
  •   밤늦게 사람들이 모두 잠든 후에야 눈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눈물은 멈추지 않는다. 탈의 부모님은 다시는 내게 말을 걸지 않는다. 장례식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만일 그분들이 내게 말을 걸었더라면, 나는 , 때로 내가 꾸는 꿈속에서의 진실을 말해주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꾸는 꿈속에서 잔디 봉지를 구멍에 빠뜨리는 것은 탈이 아니라 나라고. 어떤 때는 내가 녀석을 밀어넣는다고. 한번은 내가 녀석에게 내려가 보라고 부추겼다고.
      그것이 진실이에요, 하고 나는 그분들에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내 꿈의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구멍 속으로 들어가고 탈은 살게 되는 그 부분은. _15쪽

*코요테 ★
  •   나는 지금은, 20년이나 흘렀으므로, 아버지에게는 당신이 한때 성취하고자 했던 유형의 명성이 허락될 운명이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위대한 영화감독은 그의 몫이 아니었고, 동시대의 많은 이들이 누렸던 뛰어난 재능도 그의 몫이 아니었다. 아버지에게 분명히 있기는 했던 조금의 재능은 단지 좌절의 원천으로만 작용하며, 실현되지 않은 막연한 잠재력을 끊임없이 상기시킬 뿐이었다. _18쪽
  •   그때 나는, 아버지가 그렇게 자주 우리와 떨어져 사는 것에 대해 화를 내거나 책임을 묻기에는 너무 어렸다. 대신 아버지가 우리 삶에 남긴 빈 공간에 아버지에 대한 이미지를 이상화해 채워넣었다. 아버지는 큰 명성을얻게 될 사람이다. 언젠가 맘껏 자랑할 수 있게 될 사람이다. 나는 전국으로 배포되는 잡지 표지에 떡하니 실린 아버지 사진을 들고 학교로 걸어가는 상상을 했다. _ 19쪽
  •   아버지가 만든 첫 번째 영화에 대한 기사였는데, 내용 대부분이 호의적이긴 했지만 그래도 좀체 내 마음을 떠날 줄 모르는 짧은 문장이 하나 있었다 ─ 기사 말미의 이 문장에서 그 비평가는 아버지의 영화를 "젊은 천재의 간과할 수 없는 작품"이라고 묘사했다. 이후 세월이 흐른 뒤 깨닫게 된 일인데, 내가 그렇게 오랫동안 아버지를 용서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그 단어들과 그것들에 실린 무게 때문이었을 것이다. _ 20쪽
  •   이어지는 며칠간 나는 어머니의 얼굴에서 아버지가 써놓은 편지의 내용을 밝혀줄 만한 단서를 찾기 위해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어머니는 들뜨지도 않고 풀 죽지도 않고, 아버지가 남겨놓은 뭔지 모를 조건을 태연히받아들이는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_34쪽
  •   남청색 치마를 입은 어머니가 전화 통화를 하면서 창문 앞에 섰을 때, 나는 아버지가 성공한 변호사가 되어 있는 어머니를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버지는 당신이 결혼한 열아홉 살의 아가씨, 버클리 대학 미대생, 학생 시절 찍은 자신의 모든 영화에 등장했던 주인공, 몇 년에 걸친 그의 유일무이한 팀원을 보고 있었다 ─ 아버지가 그때 내게 고개를 돌리고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네 인생에 네 엄마처럼 아름다운 사람은 다시없을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해." 아버지가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다른 건 기억하지 못해도 그건 기억해야 해." _41쪽

*아술 
  •   강의가 끝나자 청중들 사이에는 경외심에 사로잡힌 침묵만이, 위대함을 접했다는 공통된 인정의 분위기가 흐르고 있다. _71쪽
  •   "나도 내가 바보가 아니라는 건 알아. 그렇지만 가끔 내 정신이, 뭐랄까, 물러진 기분이 들어."
      "물러진 기분?"
      "날카로움을 잃어버린 것 같아." 그녀가 나를 본다. "나는 표류해. 가끔 강의 시간에 학생이 말을 하잖아. 그럼 나는 눈으로는 그 학생의 입술이 움직이는 걸 보고 있지만 그 학생이 하는 말은 듣고 있지 않아. 나는 강의실에 있지만 강의실에 있지 않아. 내 말뜻 알겠어?" _72쪽
  •   나는 부억케 서서 나이 든 기분이 들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_75쪽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  우리는 멀리까지 걸어갈 필요가 없었다. 강의실에서부터 로버트가 시내에 얻은 조그만 아파트까지는 지척이었고,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눈과 얼음을 해치며 터덜터덜 걷는 동안 그는 내게 기말고사 형편이며 크리스마스 방학 동안의 계획에 대해 물었아. 그떄도 알았듯이, 그저 형식상 하는 질문이었지만, 나는 그가 내답에 보여주는 관심이 고마웠고 내가 말을 할 때마다 차분하면서도 사려 깊은 반응을 보여주는 것이 감사했다. 그는 나를 편하게 해주기 위해 각별히 노력하는 듯 보였고, 눈이 마주칠 때마다 아래쪽을 흙끗 내려다보는 살짝 불안한 습관이 이상하게도 내 자신감을 북돋아주었다. 우리는 강의실 밖에서는 얘기라곤 나눠본 적이 없었지만, 나는 그와 함께 있다는 사실로 인해 이미 핏속부터 편안하고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아버지의 친구 분들, 농담을 주고받기가 쉬운 나이 많은 남자들, 젊고 매력적인 여자를 앞에 두고 부끄러워하는 모습 때문에 무해한 존재가 되는 그런 남자들과 있을 때 느껴지는 따스함이었다. _92쪽
  •   "아마 알고 싶겠지요." 그가 주전자 물을 올리며 말했다.
      "뭘요?"
      "자기가 방정식을 맞게 풀었는지."
      "아뇨. 안 그랬다는 걸 아는데요, 뭘."
      "왜 그런 확신을?"
      "그냥요."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개판이었어요."
      그는 미소를 지었다. "헤더, 교수들과 있을 때 늘 그런 언어를 사용하나요?"
      "아뇨. 강의 끝나고 아파트로 초대하는 교수님들하고 있을 때만 그렇죠."
      그는 웃었다.
      "제가 방향을 올바로 잡긴 했나요?"
      그는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말하면 근처에도 못 갔어요." 그리고 그는 미소를 지었다. "나도 1년이 걸려서야 그 방정식을 완성했어요. 디랙 자신도 주석 없이는 재차 만들어내는 데 애를 먹었고."
      "그런데 뭐에 홀려서 우리한테 그런 문제를 내신 거예요?"
      그가 빙그레 웃었다. "자만심은 물리학자에게 가장 큰 방해 요인이지요." 그는 스토브에서 주전자를 들어 도자기 포트에다 뜨거운 물을 옮겨 부으며 말했다. "뭔가를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모든 발견의 기회를 없애버리게 되니까요."
      "제가 잘못 풀었으면, 그러니까 제가 맞지 않았으면 말이에요. 저를 왜 이곳에 초대하셨어요?"
      "그는 거실로 걸어와 내게 찻잔을 내밀었다. "시험을 끝낸 유일한 학생이니까."
      "나는 그를 쳐다봤다."
      "헤더는 풀이를 제출한 유일한 학생이에요. 그것이 시험이었어요. 헤더는 통과했고."
      "그럼 이제 저는 A를 받게 되나요?"
      "아뇨. 차를 좀 얻어 마시게 되지요."
      이후 우리는 그의 거실에 앉아 물리학에 대해, 디랙과 그 방정식의 근원에 대해, 우리 자신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로버트는 내 삶 ─ 가족과 친구들, 내가 자란 코네티컷의 작은 마을 ─ 에 진지한 관심을 보이는 듯했다. 그리고 그에게 얘기를 하는 동안 나는 가슴속에서 따뜻한 일렁임을 느꼈다. 그것은 내 또래 남자들과 있을 때 느껴지는 열뜬 흥분과는 또 다른 종류의 감정, 좀 더 부드럽고 보다 포괄적인 온기였다. 나는 그가 내게 숨김없이 질문하는 것과 내가 이야기할 때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것이 좋았다. 그는 나를, 내가 상상하기에 자신의 돌료를 그렇게 대할 것 같은 태도로, 성인으로, 대등한 사람으로 대했다. _94쪽
  •   "젊어서는 도전뿐이에요. 하지만 나이가 들면 그저 피곤해지거든요. 모든 물리학자에게는 자기 너머 수준의 사고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때가 와요. 자기가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수준"이라고 그는 말했다. 가장 위대한 물리학자들도, 보어조차도 그 지점에 도달했지요. 하고 그는 말했다.  _96쪽
  •   돌이켜보면 콜린은 로버트가 아닌 모든 것이었다 ─ 말하자면 그는 젊고 잘생기고 뻔뻔스러울 만큼 고집이 셌고, 세계에 대한 건강한 낙관으로 가득했다. 사람들을 돕고 싶다고 데이트 첫날 그는 내게 말했고, 그가 부드럽고 진지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을 때 나는 그의 말을 믿었다. _99쪽
  • 우리는 스카치를 마셨다. 각자가 몇 잔씩. 그리고 세 번째 잔쯤 되었을 땐가, 나는 탁자에 몸을 기대고 그의 손을 잡았다. 나는 지금도 어쩌다 그런 충동이 생겨났는지 알지 못한다. 아마도 그에게, 내가 그를, 그가 나를 생각하듯이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 같다. _114쪽 
  •   돌이켜보면, 그날 밤 이후 내가 우울증에 빠졌다고 여겨질 수도 있겠으나, 나는 서서히 형성되어가고 있던 내 삶을 체념하듯 받아들이게 되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내 어머니는 의사의 아내였고, 이제 큰 이변이 없는 한 나 역시 의사의 아내가 될 터였다. 그것은 어린 시절의 내게는 무엇보다 큰 두려움이었지만, 이제 더 이상은 나를 겁먹게 하지 않았따. 그렇다고 나를 흥분시키는 것도 아니었고 그냥 피할 수 없는 일처럼 보일 뿐이었다. 무언가를 피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일 때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편을 선택하거나 아니면 강해져 그것에 대항하려 애쓴다. 그런데 나의 마음은 강해질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_119쪽
  •   유일한 진실은 우리가 서로 숨기는 비밀에 있다고 믿는 나의 일부다. 로버트는 거의 10년 동안 콜린에게 숨긴 비밀이다. 가끔은 그에게 말을 할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러기를 10년이 되었고, 그동안 우리는 유산, 파산지경 그리고 시부모님의 죽음을 지나왔다. 이제 나는 우리가 함께 헤쳐나갈 수 없는 일은 거의 아무것도 없다고 느낀다. 그러나 내가 두려운 것은 그의 반응이 아니다. 나는 그를 잘 알고 있다. 내가 아는 그는 그 사실을 내면화하여 속으로만 삭일 것이다. 그 때문에 나를 미워할 수는 있겠지만 결코 내색은 하지 않ㅇ르 것이다. 지금껏도 그는 아마도 내게 고통을 주지 않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왔을 테고, 내게서 로버트에 대한 감정을 든는다고 해도 내게 상처주지 않을 방법만 생각할 사람이다. 나는 그것을 안다. 죄의식은 우리가 우리의 연인들에게 이런 비밀들을, 이런 진실들을 말하는 이유다. 이것은 결국 이기적인 행동이며, 그 이면에는 우리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진실을 밝히는 것이 어떻게든 일말의 죄의식을 덜어줄 수 있으리라는 추정이 숨어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지 않다. 죄의식은 자초하여 입는 모든 상처들이 그러하듯 언제까지나 영원하며, 행동 그 자체만큼 생생해진다. 그것을 밝히는 행위로 인해, 그것은 다만 모든 이들의 상처가 될 뿐이다. 하여 나는 그에게 말하지 않았다.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 그 역시 내게 그러햇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_128쪽

*강가의 개 
  •   키가 183센티미터나 되고 가슴은 떡 벌어진 형이 구부정하게 서서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보자 나는 무서워졌다. 한순간 나는 형에게 미안한 마음까지 들 뻔했다. 그간 나를 때렸던 일들이며 나를, 굴욕적으로 만들었던 사건들을 모두 다 용서해줄 뻔했다.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형에게 무슨 말인가를 했고, 형은 내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침묵 속에 집으로 걸어갔고 다시는 그때 일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_144쪽
  •   더그 형은 장화에서 흙을 긁어냈다. "이제 너한테는 달리 할 말이 없는 것 같다. 전에는 할 말이 많았는데 지금은 다 잊어버린 것 같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나중에는 기억이 나지 않겠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집 안으로 들어와버렸다.
      그 소문이 특정한 날 시작되지 않았던 것처럼, 아이들이 그날 밤 있었던 일에 대해 더 이상 얘기를 하지 않게 된 것은 어느 특정한 날부터는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조용해졌다. 아이들은 잊어버렸다. 여름 지나 가을,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_154쪽

*외출 ★
  •   그것은 잔인한 행동이었고 지켜보는 우리 마음을 슬프게 했짐나 우리는 한 번도 제지하기 위해 나서지는 못했다. 그저 구석 쪽에 멀찌감치 앉아 화가 난 채 지켜볼 뿐이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보자면, 이번만큼은 괴롭힘이나 구타를 당하는 것이 우리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기도 했다. 인기 있는 아이들은 아미시 10대들처럼 촌스럽고 취약한 목표물들을 마주하고 있으니, 우리 같은 건 사실상 잊어버린 듯했다. _163쪽
  •   그 아이는 자기에게 허락된 몇 시간 안에 가능한 한 많은 것을 하고 싶고 보고 싶어, 언제나 신나했고 언제나 초조해 했다. _168쪽
  •   이상한 일이지만, 나는 그 아이가 그렇게 떠나버리는 것에 화가 나지 않았다. 나는 그 아이 역시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차를 몰고 다시 식당으로 돌아가는 동안 나는 갑자기 그 아이에게, 내가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그것이 내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말해주고 싶었다. 그 아이를 기억하겠다는 내 마음을 확인시켜주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그러지 못했다. _181쪽


*머킨 


*폭풍 
  •   나는 언제나 누나가 만나는 남자들에 대해 연민 같은 것을 느꼈다. 일면식도 있기 전부터 암묵적인 이해가, 누나의 기분과 기질에 대한 위로의 끄덕임 같은 것이 있다고 할까. _227쪽
  •   어머니와 나 사이를 지나고 있던, 침묵으로 가득 찬 그와 같은 순간들이 그 집에서 보낸 나의 전 생애였다. 내게 줄곧 어머니는 근본적으로 슬픈 여인이었다. 어머니는 여러 면에서 아버지가 자신의 삶에 남긴 부재를 메우는 방법을 발견하지 못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부터 집에는 우리 둘밖에 없었고, 나는 내가 숙제를 하는 동안 부엌에 함께 앉아 계시곤 하던 어머니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한다. 내가 고개를 들 때마다 어머니는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나는 어머니의 눈을 보며 어머니가 전적으로 슬프다는 것을 언제나 알 수 있었다. 내 유년의 대부분 동안 어머니의 눈은 그러했는데, 지금 어머니의 눈이 또 그랬다 ─ 어머니의 눈은 자신의 삶에는 기쁨보다 실망이 훨씬 많았다고 말하고 있었다. _234쪽
  •   남은 오후 시간, 나는 내 방에서 우리 가족의 느리고 꾸준한 종말의 과정을 반추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는 구름이, 정확히 우리 집만 한 크기와 모양의 구름이 우리에게 드리워진 것 같았고, 우리 미래를 엮어낼 복잡한 요소들은 그 이전과는 전혀 달라질 것 같았다. _245쪽


*피부 


*코네티컷 

  •   우리는 나름의 방식으로 우리 삶에 아버지가 부재하는 것에 익숙해갔다. _256쪽
  •   나는 이런 식으로 내 이론들의 방향을 정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몇 주 동안, 지나가는 불안이었기를 바랐던 나의 마음은 활동을 중단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머니를 향한 감각의 날이 곤두서다시피 했다. 나는 어렸을 때 곤충들을 관찰하던 방식으로 어머니를 연구했고, 모든 미묘한 움직임 하나하나를 날카롭게 인식했으며, 충분히 오랜 시간을 두고 응시한다면, 반드시 숨겨진 어떤 비밀이 드러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어머니에게서는 평상시와 달라진 점을 거의 발견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지금까지와 다를 바 없는 일상을 이어갔고, 온화한 얼굴 아래 감춰진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였으며, 앞치마를 두른 골격 아래 어두운 욕망이 도사리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어머니는 그저 어머니처럼 보였다. 아버지의 부재 상황에 대해 언제나 그랬듯이 조금 착잡해하고 다소 힘겨워하는 원래 모습 그대로였다. 저녁이면 어머니는 희미한 불빛 아래서 책을 읽거나 대학 입학 원서를 작성하는 누나를 도와주면서 우리와 함께 집에 머물렀고, 낮에도 내가 아는 한, 지금까지의 일상을 이어갔다. _265쪽
  •   돌이켜보면, 그 시절 내가 마음속에서 공들여 만들어낸 환상들은 아마도 그 둘 사이에 실제로 있었던 일보다 훨씬 비도덕적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날 오후 이후에도 두 사람이 만남을 이어갔다는 것을 안다. 만나서 하는 일이 길에서 마주친 다른 어머니들이 하는 사교 행위가 아니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들의 교제가, 당신이 그것을 뭐라 부르든 간에 열세 살짜리의 마음속에서 상상한 정도까지 진행됐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은 그저 10월의 그날 오후에 그랬듯이, 뜰을 함께 거닐고 손을 잡고 얘기를 나누며 오후 시간을 보냈으리라. 그들이 자기들의 행동을 인지하지 못했다거나, 자기들의 행동이 이웃 사람들의 눈에 '비정상적으로' 보이리라는 것을 몰랐다고 가정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함께 오후를 보내는 동안 그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 했거나, 헤어져 따로 있을 때에도 그 문제는 완전히 잊어버리려고 애를 썼을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_266쪽
  •   그때야 분명하게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올리앤더 부인과 있을 때 어머니는 분명 달라 보였다. 벤틀리 부인과 달리 올리앤더 부인은 지극히 평범한 용모였다. 지금도 그 부인의 얼굴을 떠올리려 하면, 내게는 그저 하얀색이 보일 뿐이다. 흐릿한 금발 아래 이목구비가 생각나지 않는다. 정말 특징 없는 얼굴이었고 성격도 꼭 그와 같은 것 같았다. _272쪽


*옮긴이의 말
  •   『양자전기역학 : 빛과 물질에 관한 이상한 이론QED: The Strange Theory of Light and Matter』에서 리처드 파인만은 낮에 램프를 켜놓고 보면 빛이 유리창 표면에서 부분적으로 반사된다고 말한다. 실험에 따르면 100개의 빛입자 중 평균 네 개는 반사되어 돌아오고 96개는 유리를 통과한다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빛입자가 자신의 경로를 선택하는 과정을 알지 못하며, 특정 입자의 경로를 예측할 수 없다.
      플래너리 오코너 단편문학상을 수상한 앤드푸 포터의 단편집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The Theory of Light and Matter』에서는 사람의 마음이, 기억이, 기억이 현재에 미치는 영향이 그러하다. 마음은 그 주인이 마음먹은 대로도, 마음먹고 싶은 대로도 움직이지 않는다. 놓아버리고 싶어도 놓지 못하고(「구멍
    」), 버티려고 해도 무너지고(「코요테」), 잘하고 싶어도 잘되지 않고(「아술」), 곁에 남고 싶어도 떠나게 되고(「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용서하고 싶어도 용서가 어렵고(「강가의 개」), 잡을 수 있는데 잡아주지 못하고(「외출」), 입으로 말을 해도 귀로 듣지 못하고(「머킨」), 나아가고 싶은데 뒤돌아보게 되고(「폭풍」), 안 하고 싶었던 일을 하게 되고(「피부」), 보며 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한다(「코네티컷」),.
      어디 픽션의 인물들일 뿐인가? 이들은 내가 아닌가? 당신이 아닌가? 우리는 흔들린다. 일상은 이어지고 삶은 큰 폭으로 변하지 않는다 해도, 기억은 사라지지 않고, 상실은 극복되지 않으며, 상처와 실망과 좌절은 영원히 영향을 끼친다. 진심을 다했을수록, 허위가 아니었을수록, 고통의 우물은 깊어진다. _283쪽
  •   「코요테」는 15년 전 열세 살 여름, 부모의 결혼 생활이 깨져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소년의 이야기다. 지금 와, 그 당시 아버지는 "단지 좌절의 원천으로만 작용하며, 실현되지 않은 막연한 잠재력" 대문에 우울증을 알고 있었고, 어머니는 여전히 아버지를 사랑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해도, 그러나 돌이킬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_288쪽
  •   "그는 나보다 나를 더 잘 이해하는" 사람이었는데, 헤더는 그의 곁에 그의 연인으로 머물지 못했다. _288쪽
  •   부재하는 사람, 목소리 없는 입 _ 289쪽
  •   완벽과 행복을 꿈꾸었던 미래가 잔인한 현실이 되는 과정을, 그 감정적 충격을 우리는 찰나의 순간에 경험한다. _289쪽
  •   노력하는 여린 사람들이 좋다. _2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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