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sonable apollon's mind :: 지식, 인식론 2015/11/05 16:57 by yorq


 지식(knowledge):

  ‘지식’ 그 자체는 무엇보다 우리 머릿속의 그 무엇이다. 이 점에서 그것은 하나의 ‘정신적 실재(mental entity)’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우리의 의지나 감정과 같은 여타의 정신적 실재와는 다르다. 지식은 그것의 참과 거짓이 문제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른바 ‘명제(proposition)’라 부르는 형태의 정신적 실재이다. 명제는 개념(또는 관념)과 개념(또는 관념)을 연결 짓는 정신적 활동으로서 판단(judgment)의 결과이다. 주1)

  하지만 전통적으로, 지식에 관해서는 단순히 그것을 명제로 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이상의 부가적인 조건을 부여한다. 즉 ⅰ. 우리가 그것을 믿어야 하며, ⅱ. 그것은 결과적으로 참이어야만 하고, ⅲ. 그것은 정당화된 것이어야만 한다. 이러한 의미로 전통적으로 지식이란 ‘정당화된 참인 믿음(justified true belief)’이란 식으로 규정된다. 

  우리의 지식이 일종의 믿음이란 점은 우리의 심리 상태에 비추어 쉽사리 이해할 수 있다. 즉 우리의 판단 활동으로 나타난 결과인 명제를 우리가 긍정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결코 우리의 지식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마음에 우리 마음속의 한 실재로서의 명제를 수용할 태세를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어떤 명제에 대해 그것을 수용할 태세를 갖추었다고 하는 것만으로 그것이 곧 지식이 되기에 불충분하다. 우리가 받아들이고자 하는 것이 적어도 하나의 명제로서 참과 거짓이 판명될 수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그것이 참이기를 바라며, 또한 그것은 참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만일 우리가 어떤 명제를 마음속에서 수용하여 그것을 믿고, 나아가 그것을 하나의 지식으로 인정하려면 그것은 또한 참이어야 한다. 만일 우리가 그 어떤 명제에 대해 믿음을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그것이 거짓임을 알고 있다면, 우리의 심리 상태로 볼 때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 어떤 것에 대해 믿음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그 자체 이미 ‘참’임을 믿고 있는 셈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이미 문제의 명제에 대한 믿음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상의 언급과 관련해 이제 어떤 명제에 대해 우리가 믿음을 갖고, 따라서 그 명제가 참임을 믿는다고 해서 곧 해당 명제를 참이라고 낙인찍을 수 있다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말한 바는 그 어떤 명제가 하나의 지식이 되기 위해서는 그것에 대해 우리가 참인 믿음을 가져야만 한다는 것이지, 그 자체로 곧 해당 명제가 참임을 보장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므로 어떤 명제가 우리의 지식이 되기 위해서는 또한 그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진정으로 참임을 보증해줄 방법이 있어야만 하고, 어쨌든 그러한 방법으로 정당화될 수 있어야만 한다. 


주1): 

  지금 내 앞에 존재하여 나에게 인식되고 있는 존재자를 우리는 ‘대상(對象, object)’이라 부른다. 나에게 ‘마주 서’ 존재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바로 이런 의미로 독일어에서는 ‘Gegenstand’라는 낱말을 사용한다. 이와 같은 대상이 나의 감각 기관을 통해 지각(知覺, perceive)되어 나의 두뇌 속에 일정한 상(像, image)으로 맺힐 때, 우리는 그것을 가장 단순한 의미로 ‘표상(表象)’이라 부른다. 영어로는 ‘representation’이라 하는데, 원래의 대상을 나의 두뇌 속에 다시 변형시켜 제시하였다는 의미이다. 또한 이를 독일어로는 ‘vorstellung’이라 하는데, 이는 표상을 할 수 잇는 능력으로서의 우리의 의식(意識) 앞에 문제의 대상을 (다시) 놓았음을 뜻한다.

  이 경우, 가장 소박한 의미로 관념(idea)이란 이와 같은 표상에 다름 아니며, 이것은 일차적으로 각 개인마다 다를 수 있는 지극히 주관적(subjective)이며 개인적(personal)ㆍ사적(私的, private)인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사적인 관념들 사이에도 어떤 공통점이 가능할 수 있는데, 사적인 관념들 사이에서 이처럼 공통적인 부분들로써 성립되는 것을 ‘개념(槪念, concept)’이라 부른다. 그러므로 관념이 사적인 데 반해, 개념은 어디까지나 객관적이며 공적(公的, public)인 것이다. 단순히 사적인 관념을 공적인 개념으로 전환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은 이른바 ‘정의(定擬, definition)’이다. 이처럼 공적인 개념이 형성되고 나면, 우리는 그것에 일정한 언어적 매개물인 낱말을 대응시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된다.




‘인식론(epistemology, Erkenntnistheorie, 認識論)’을 뜻하는 영단어 ‘epistemology’는 그리스어의 ‘epistēmē(지식)+logos(논리·방법론)’에서 유래했다. ‘epistemology’를 ‘지식론’이 아니라  ‘인식론’이라 번역하는 이유는 ‘지식’이란 명사는 동사(지식하다)로 쓸 수 없지만, ‘인식’이란 명사는 동사(인식하다)로 쓸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백종현 선생의 강의(링크) 중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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