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 지랄 :: 망중한 2017/02/07 15:28 by yorq


새로운 말은 계속 개발될 것이다. 우리가 살며 겪는 숱한 감정과 상황들보다 우리가 개발해 쓰고 있는 말이 턱없이 부족해서다. 어떤 감정과 상황을 말하고 싶어도 아직 그걸 표현할 마땅한 말이 없으니, 그럴 땐 별수 없이 욕으로 때우기도 한다.

쨌든 나는 주로 시인들이 그런 말을 개발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데, 한 번은 장례식장에 가서 할 수 있는 말이 도통 없길래, "시인들이 왜 이렇게 일을 안 하지?" 하고 원망한 적도 있었다. 장례식은 사람 사는 세상에 끊일 수 없는 일인데, 왜 이런 상황을 위한 말은 개발되지 않았을까? 하고 의아해했던 거다. 그런데 장례식에선 달리 어떤 말도 전할 필요가 없어서 그런 말이 아예 개발되지 않은 것 같다. 오랜 시간 사람들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든가 r.i.p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온 것 같다.

그와 반대 방면에서, 내 상황에 꼭 맞는 말을 만나는 건 꽤 다행한 일이다. 백 년 전이든 천 년 전이든 누군가 내 생황을 딱 설명하는 말을 개발했다면 그건 나와 같은 상황을 토로하기 위해서였을 거다. 그건 적어도 나만 이런 따위 감정과 상황에 시달리며 사는 건 아니라는 얘기가 된다.

비슷한 얘기가 떠오른다. 이건 이청준 선생의 말인데, 무서운 산속 홀로 밤길을 가다가 도중에 마주 오는 사람을 만나면 서로 "좀 전에 당신을 앞서 길을 간 사람이 있었다."고 일러준단다. 그렇게 말하면서 상대방 밤길에 위안과 용기를 주는 것이란다. 그러니까 내 상황에 꼭 맞는 말을 만나면 마치 그런 식의 격려를 받는 느낌이다. 나는 한국 사람이어서 그런지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사실에 꽤 위로를 받는다.

결국 이 모든 건 망중한이란 말이 생각나서 시작한 얘기였다. 이 와중에 이런 얘길 지껄이고 있다니, 그야말로 망중한이다. 물론 바쁠망 자가 아니라 망할망 자를 쓴 망중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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