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minute comment :: [도서] 조진호 - 에볼루션 익스프레스 (위즈덤하우스, 2021) 2021/03/30 23:15 by yorq

* 이 글은 조진호 작가님의 신간 <에볼루션 익스프레스>를 위즈덤하우스 출판사에서 받아, 신간 서평단으로서 작성했습니다.

* 이 글은 책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문송한 과알못의 개인 감상입니다. 긴 글에 주의하세요.




  <익스프레스 시리즈 > 4편이 나왔다. <01. 그래비티(중력)>, <02. 게놈(유전자)>, <03. 아톰(원자)>에 이어 이번 주제는 <04. 에볼루션(진화)>이다. ‘생명은 어떻게 발생했나?’라는 질문에 인류가 어떻게 답해왔는지, 지금은 어디까지 와 있는지 찬찬히 A to Z를 들려준다. 익스프레스 시리즈는 이렇게 각 분야가 붙든 질문이 무엇인지, 그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고 있는지 차근차근 들려주는 역사 책이다. 그래서 전공자가 아니어도, 오히려 전공자가 아니어서 얼마든지 즐겁게 볼 수 있다. 


  당연히 믿음의 차원인 자연발생설이나 창조설이 아니라, 과학의 대답인 진화설을 주로 다룬다. 우선 진화설의 거인 찰스 다윈의  탐구를 살펴보고, 유전학 정보가 없어 가로막혔던 그의 통찰이 유전학과 분자생물학의 발전에 힘입어 어떻게 힘을 얻고 정교화됐는지, 그리고 진화설 안에서 어떤 쟁점과 난제가 불거지는지 일러준다.


   어떤 기사에서 ‘침팬지와 인간의 DNA는 98% 일치한다.’고 소개했다. 이 사실은 진화설의 근거다. 그런데 이 명제를 전제 삼아 어떤 사람은 ‘따라서 인간은 침팬지가 변신한 것이다.’라고 결론 내리고, 어떤 사람은 ‘따라서 침팬지와 인간의 조상은 같다.’라고 결론 내린다. 진화설을 제대로 이해하느냐, 이해하지 못하느냐에 따른 차이다. 진화설을 잘못 이해한 채 진화설 out! 을 외치는 사람도 안타깝지만, 실상 따지고 보면, 저 명제에 대한 진화설의 올바른 해석을 친절히 일러주는 사람도 별로 없다. 그 가운데 친절하게 일러주는 사람이 바로 조진호 작가다. 조진호 작가가 귀한 이유다. 


  나는 이제껏 다윈의 진화설 하면 온통 생존과 번식으로 점철된 ‘자연선택’만을 떠올렸다. 그런데 이번 편을 보면서 또 다른 축인 ‘공통의 조상’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보고 이해하게 되었다. 종 분화에 따른 새로운 종의 출현도 그랬다. 익스프레스 시리즈의 강점은 해당 주제에 대한 흐름을 통으로 보여준다는 데 있다. 전체 그림에서 기존에 지녔던 정보가 어디에 배치되는지, 전체 그림에서 내가 모르는 빠진 부분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채울 수 있다. 그렇게 이번에도 나의 불완전함을 조금은 만회할 수 있었다. 리처드 도킨스가 유명하다고 해서 그의 책을 아무리 봐도 진화설 전체 그림을 온전히 그리긴 어려울 것이다. 그의 책은 숲이라는 전체가 아니라 나무라는 어느 한 부분에 집중하고 있는 거니까.


  익스프레스 시리즈를 보다 보면, 인류의 거대한 협업이랄까, 집단 지성에 자주 감동하고 탄복하게 된다. 공통의 조상과 자연선택이라는 다윈의 통찰은 실로 놀랍고도 위대한 것이었지만, 그것을 검증할 만한 기술과 능력이 그 시대엔 없었다. 시대적 한계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니까. 하지만 이후 전자 현미경이 세포의 모습을 면밀히 들여다보며 화학반응을 규명하고, DNA 구조와 기능이 밝혀지며 복제 방식을 이해하게 되고, 동위원소를 분석해 화석의 정확한 나이를 알게 되면서, 그러니까 제각기 분야에서 자기 방향을 추구하다 보니, 마치 다윈을 위해 일제히 궐기한 것처럼 어느덧 다윈의 이론을 뒷받침하고 있다. 


  과학의 서로 다른 분야가 서로 상보하고 정합하면서 큰 퍼즐을 채워가는 모습은 몹시 드라마틱하다. 그래서 과학사를 들여다보는 건 어쩌면 거대한 협업의 장을 목격하는 것과 같다. 나는 집단의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 인류만의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무리를 이뤄 집단 생활하는 다른 동물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기록하고 전승할 수 있는 인류만이 세대를 뛰어넘어 과거와 현재, 미래의 사람이 모여 하나의 집단으로 협력하며 정합적 체계를 빚어낸다. 같은 이치로 익스프레스 시리즈 안에서도 <02. 게놈 익스프레스>와 <04. 에볼루션 익스프레스>가 서로 상보한다.



  진화설은 생명이 ‘어떻게’ 생겼나? 를 규명하지만, 생명이 ‘왜’ 생겼나?, ‘반드시’ 생겨야 했나? 에 대해선 기능하지 않는다. 생명의 의미와 방향, 필연성에 대해선 이렇다할 답을 내놓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진화설이 전하는 허무함에 많은 사람이 낙담하고 반감을 표하기도 한다. 


  12장에서 스티븐 제이 굴드와 에른스트 마이어가 지구의 생명 현상이 우연인지 아닌지를 두고 벌이는 논쟁이 인상 깊다. 그 둘을 보면서 머리로는 제이 굴드에게 기울었지만, 가슴으로는 마이어를 지지하고 싶었다. 제이 굴드는 생명의 발생이 우연이라고 한다. 시간을 되돌려 똑같은 조건이  갖춰져도 반드시 생명이 발생하진 않을 것이란 말이다. 그러니 완전한 우연에 이유나 목적은 없다고 말한다. 반면 마이어는 우연이라 단정 지으면 안 된다고 한다. 우연이라고 마침표를 찍는 순간 탐구는 거기에서 끝나 버린다고. 그러니 이유와 원리를 알고자 하는 탐구를 멈춰선 안 된다고 말한다. 이 두 사람의 모습에서 이런저런 상념이 떠올랐다.


  “중요한 과학 혁명들의 유일한 공통적 특성은,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기존의 신념을 차례차례 부숨으로써 인간의 교만에 사망 선고를 내렸다는 점이다 ”고 말한 제이 굴드는 우리 인간종을 제삼자의 시각으로 보면서, 자기만 특별하다고 굳게 믿는 유아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자기객관화를 통해 아이가 어른으로 성숙하는 것처럼, 인류는 자기중심적 사고를 떨치고 보다 성숙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마이어는 알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은 결코 떨쳐낼 수도, 떨쳐내서도 안 된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러니까 둘을 종합하면 둘 다 인류를 향한 자성의 목소리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누가 맞고, 틀리다를 따지기보다 그저 이런 성찰을 자아내는 우리 인류 모두 같은 편! 인류 짱! 을 외치며 퉁 치고 싶다.


   지구의 생명 현상이 우연인가 필연인가를 따져보는 일은 곧장 외계생명체를 긍정하냐 부정하냐와도 연결된다. 지구라는 조건에서 생명이 발생했다면, 지구와 비슷한 조건이라면 얼마든 생명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외계생명체의 존재도 긍정할 수 있다. 나는 그동안  다정한 칼 세이건 선생의 이런 식의 낙관적 논리에 따라 외계생명체가 있을 수도 있겠거니 하며 지냈다. 그런데 냉소에 찬 제이 굴드 선생의 말을 듣곤 그게 아닐 수 있겠거니 싶다. 우리가 생명 친화적이라고 믿는 지구에서조차 46억 년 동안 단 한 번 생명이 발생했다. 그것도 기적 같은 우연으로. 그런데 지구 외에 생명? 어림도 없다. 라고 제이 굴드 선생이 말하길래, 서...설득 당했다.


  여전히 진화설은 생명의 의미에 대해선 책임지지 않는다. 이것이 LUCA의 정체와 더불어 이 책에서 소개하는 진화설의 최대 난제다. 그래서인지 책의 엔딩이 뭉클하다. 다윈 선생이 그토록 그리워하던 딸 애니를 만나 지금을 즐기게! 라고 외친다. 그리고 조진호 작가님도 작가 후기에서 이 점에 대해서 말한다. 그런데 이건 비단 진화설만의 문제가 아니라, 과학 자체에 대한 역할과 기능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과학이 모든 걸 다할 수도, 다할 필요도 없다. 과학은 유물론의 세계를 책임지면 충분하다. 우리 삶은 유물론의 세계 그 이상이고, 우리 삶이 과학보다 크니까.



  <익스프레스 시리즈> 앞선 편들과 다른 이번 편의 꿀잼 포인트는 ‘주요 등장인물 소개’에 담긴 메이킹 필름이다. 본문에 언급되지 않은 윌슨, 도킨스, 해밀턴이 등장하며 자기들이 통편집 당했다며 따지는데, 도킨스가 조진호 작가에게 “당신은 멍청이라는 거요”하는 대목에서 빵 터진다. 나아가 다윈과 논문을 공동 발표한 월리스가 나오는데, 다윈과 월리스가 서로를 존대하는 모습은 원숙한 어른의 태도를 보여주는 듯하여 훈훈한 귀감이다. 무엇보다 바버라 매클린톡이란 여성 과학자는 <02. 게놈 익스프레스>에 이어 이번 편에도 주요 화자로 활약한다. 작품 내 그녀의 비중은 그녀가 이룩한 학문적 업적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인물 자체가 지닌 매력에서 온 게 아닐까. 위인전에 이름을 올리는 여성 과학자는 마리 퀴리나 제인 구달 정도가 전부인데, 바버라 매클린톡 또한 그 협소한 대열에 오를만한 인물이 아닐까 싶다. 짤막한 분량이지만 강력한 존재감을 뽐내는 메이킹 필름이다.




 <03. 아톰 익스프레스>부터 뒤표지 책날개에 다음 편을 예고하는 전통(?)이 생겼다. 이번 편에서 예고한 다음 편 주제는 <05. 퀀텀(양자)>이다. 시리즈 번호가 ‘1’, ‘2’ 식으로 한 자리가 아니라, ‘01’, ‘02’ 식으로 두 자리로 표기되는 게 너무 좋다. 이 시리즈가 못 해도 두 자릿수 이상으로 이어질 거란 희망을 독자에게 전하니까.


이번에도 조진호가 조진호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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